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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정주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36호
발행연도
2011.7
수록면
125 - 16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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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목효지의 풍수설을 통해 세종말~단종초의 정치적 갈등과 그 의미를 정리한 것이다. 목효지는 조선초 풍수가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이지만, 그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편이다.
목효지는 세종 23년(1441) (훗날 단종의 어머니인) 왕세자빈 권씨의 능 자리가 장자와 장손이 일찍 죽는 땅이라고 비판한 것을 비롯하여, 세종 30년(1448) 세종이 짓는 문소전 불당이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고 주장하였고, 단종대에도 문종의 능인 현릉의 위치가 왕을 약하게 하는 곳이라고 주장하였다.
목효지가 올린 세 번의 상소는 모두 무시되었지만, 문종의 죽음 이후 목효지의 풍수설은 오히려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목효지의 예언대로 문소전 불당의 건립 이후 세종과 문종이 잇달아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이제 단종마저 불길한 운명에 처할 것을 염려한 신하들은 단종을 풍수지리적으로 안전한 창덕궁으로 옮기려고 했다.
그러나 단종을 보호하려는 신하들의 의도는 수양대군의 반대에 부딪쳤다, 수양대군 일파는 끊임없이 단종을 풍수상 불리한 상황에 처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문종의 광중에서 물이 나왔음에도 다른 자리를 찾으려 하지 않고, 바로 옆에 매장을 시도한 정인지 또한 수양대군 일파의 거두였다.
목효지의 주장은 공교롭게도 모두 단종과 연관된 풍수적 대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단종의 부모 능 선정 때마다 이의를 제기했으며, 문소전 불당 문제도 결국 단종의 안위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목효지는 풍수지리를 이용하여 단종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단종의 왕위를 넘보았던 수양대군과 대립하면서 비운에 죽을 수밖에 없었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왕세자빈 權氏 陵所 반대 상소
3. 文昭殿 불당 반대 상소
4. 顯陵을 둘러싼 수양대군과의 대립
5. 단종대 문소전 불당 철폐 논쟁과 목효지
6.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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