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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효경 (한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35호
발행연도
2011.3
수록면
175 - 21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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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국시대의 난세를 험난하게 살아야 했던 齊나라의 장수이자 제왕이었던 전횡이 한반도의 서해안 최극단 섬들인 於靑島, 外煙島, 鹿島 등의 마을 제당의 신령으로 모셔져 있다. 전횡은 不事二君의 정조를 지키며 죽음을 택한 인물이기에 麗末蘇初로부터 줄곧 관심의 대상이었다.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節義와 忠情의 상징의 표상이었다. 兩亂과 명청 교체기를 겪으면서 명나라에 대한 再造之恩의 분위기 속에서 명나라와 중국 영웅에 대한 숭배가 일어났다. 전횡에 대한 관심도 그와 더불어 다시 한번 부각된다. 儒林이 그를 위해 사우를 건립하고자 한 것과 같이 민간에서는 그를 마을의 신령으로 좌정케 했다.
한반도보다는 산동반도에 가까운 이들 섬은 조선중기 이후에 嗚呼島 혹은 田橫島라 불렀다. 오호도가 중국의 용어라면, 전횡도는 조선의 용어이다. 조선전기에는 空島정책으로 인해 섬에 사람이 거주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서해의 최극단의 방어를 위해 이들 섬에 烽燧를 건립했고, 인근지역에서 봉군을 모아 들여보냈다. 조선중기 이후 避役이나 罪를 피하기 위해 섬들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섬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이들 섬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들 섬은 모두 농지가 부족하여 농업이 발달할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섬 생활의 가장 큰 문제는 식량난이었다. 이를 타개한 인물로 전횡이 부각된다. 稅穀船을 부채로 끌어들여 그 곡식을 빼앗아 섬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善政을 베풀었고, 그의 부하는 장군을 하루라도 더 연명시키기 위해 500명이 한꺼번에 죽음을 맞이했다. 이러한 전설에는 극심한 식량난을 겪어야 했던 섬사람의 삶의 질곡을 잘 드러난다. 이는 전횡의 역사적 평가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민간의 종교적 열망을 담고 있다. 선정을 베푼 전횡을 마을의 신령으로 숭배하면서 마을의 제사 구조는 산신제-전횡제-하당제로 구조화된다. 농업의 신령인 산신과 더불어 새로운 종교적 목적을 위해 전횡이 모셔졌기에 상당제가 산신제-전횡장군제로 분화된 것이다. 새로운 종교적 열망을 위한 전횡은 지속적으로 발발하는 어업과 관련해서 어업의 신으로 숭배된다. 선주와 고래잡이가 중심이 되어 전횡에게 치제했다. 전횡은 새롭게 부각되는 당제의 어업신으로 좌정한 것이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전횡과 嗚呼島에 대한 관심
3. 외연열도의 堂神이 된 전횡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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