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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정애 (한국예술종합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정신문화연구 2012 봄 호 제35권 제1호 (통권 126호)
발행연도
2012.3
수록면
116 - 155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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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최북단에 자리한 함경도는 조선을 건국한 太祖 李成桂(1335-1408, 재위 1392-1398)가 나고 자란 ‘豊沛之鄕’이었다. 따라서 개국 초부터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함경도의 왕실사적을 정비하기 시작했고, 특히 왕권 강화에 힘을 쏟았던 영조·정조 연간에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또한 지역민들도 영세한 지역사를 극복하기 위해 왕실과의 인연을 부각시킴으로써 사적의 수가 점차 늘어났다. 왕실사적은 종류가 매우 다양해서 생가, 놀이터, 제단 등이 포함되었다. 무엇보다 이성계 관련 사적이 많고, 함흥과 영흥에 집중해서 몰려 있는 점도 특징이다. 한편 주요 사적이 17세기 후반 함경감사를 역임했던 南九萬이 ‘20景’을 선정해 제작한 관북명승도에 포함된 이후 19세기 말까지 꾸준히 재현되었다. 현존작은 公的인 목적의 王陵圖와 私的 주문으로 그려진 名勝圖 계열로 나누어지는데, 모두 정형화된 구성과 내용이 큰 변화 없이 계승되었다. 다만 작품의 성격과 제작시기, 주문자와 화가의 신분에 따라 양식과 완성도에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함경도 왕실사적의 형성 배경과 내용
Ⅲ. 18-19세기 함경도 왕실사적의 재현 양상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s

참고문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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