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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형웅 (한백문화제연구원)
저널정보
한국목간학회 목간과문자 목간과문자 제8호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185 - 205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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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주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운영되었던 성이다. 성 주변으로는 고려시대 왕실사찰인 봉업사지를 비롯하여 매산리사지, 매산리 고분군 등의 고려시대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산성이 위치한 죽산면은 동쪽으로 장호원이나 이천, 남쪽으로 진천과 청주, 북쪽으로 용인, 서쪽으로 안성, 평택 방면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하여 죽산지역은 교통의 중심지이자 군사적 요충지로 주목을 받아왔다.
집수시설은 산성 동문지 안쪽에 형성되어 있는 평탄지에서 확인되었다. 이곳은 동쪽을 제외한 삼면이 능선으로 둘러싸여 있어 성 내부에서 가장 수량이 풍부한 곳이다. 집수시설은 신라시대의 것이 6기, 조선시대의 것이 2기가 확인되었다.
신라시대 집수시설은 지형적 여건에 따라 암반을 굴착하거나 퇴적된 뻘층을 정리한 후 조성하였다. 석재를 수직으로 쌓거나 일정 높이에서 내어쌓기를 하는 등 석축 방법은 일정하지가 않다. 석축 또한 정교하지가 않아 각 집수시설은 최소 1차례의 수축 또는 개축이 이루어졌다.
집수시설 내부에서는 다양한 기종의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A3 집수시설에서는 제의용으로 추정되는 자루형 목제품이 출토되었다. A6 집수시설에서는 묵서흔이 확인된 용도미상의 목제품 1점과 일부에 눈금이 새겨진 목제품 1점이 출토되었다.
죽주산성의 신라시대 집수시설은 계곡부의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배치양상을 보인다. 비록 허술하게 축조하여 개축의 흔적은 나타나나 여러 기를 동시에 조성하여 운영된 특징이 나타난다. 또한 출토유물은 양상이 차이가 없고, 6세기 후반에서 7세기로 편년된다. 즉 죽주산성의 신라시대 집수시설은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유적의 위치와 환경
Ⅲ. 집수시설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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