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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池容瑍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69號
발행연도
2011.3
수록면
39 - 69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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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湖圖는 中國 浙江省 杭州에 위치한 西湖와 그 주변의 풍경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서호 인근에는 수많은 寺刹과 道觀, 祠院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林連(967-1028)와 蘇軾(1036-1101), 韓世忠(1088-1151). 岳飛(1103-1141) 등의 인물들과 수많은 고사, 문학작품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문화장소로 의미가 깊다. 중국에서 서호도는 浙江省 杭州 臨安으로 南宋(1127-1279)의 새로운 황궁이 위치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회화의 주제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이시기 서호의 경관을 한 화면에 담아내는 西湖總圖와 西湖十景을 그린 西湖十景圖가함께 그려지게 되었다. 남송대에 성립된 서호도의 두 개의 형식, 즉 ① ‘西湖總圖 形式’과② "西湖十景圖 形式’은 이후 중국에서 청대까지 지속적으로 그려진 산수화의 주요 화목 중 하나가 되었다.
朝卿期(1392-약 1550) 중국 서호는 왕공?사대부들 사이에서 ‘江南의 제일경’으로 인식되었다. 이 시기 한강의 서호는 음성적으로 중국의 서호를 연상시키면서 점차 중국의 서호와 유사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문인들은 한강 서호에서 계회나 시회를 벌이면서 친목을 도모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사신의 접대도 대부분 서호 부근에서 하였다.
朝鮮中期(약 1550-약 1700) 이후에는 산수판화와 회화작품의 유입을 통해서 서호에 대한 인식이 보다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명대 전여성의 『서호유람지』는 조선의 서호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서호도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선에서도 서호도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明의 사신과의 수창문학을 통한 서호의 재인식, 임란전후 명군과 조선문인들 간의 교유 등을 통한 강남에 대한 동경은 이 시기 서호인식과 서호도를 이해하는데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朝鮮後期(약 1700-약 1850년)에는 이전시기에 전래된 『海內奇觀』,『三才圖會』,『西湖遊覽志』 같은 산수판화집류와 더불어 명말의 산수유람기 등을 통해 서호에 대한 정보가 대부분 유입되어 있었는데, 서호도의 도상유입 경로는 대부분 이들 화보에 의거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다양한 중국의 화적과 판화에 나타난 서호도나 서호십경도 중 특히 애호되는 장면을 중심으로 도상의 분화와 차용의 현상이 나타난다. 조선후기의 서호도는 중국의 산수판화집을 비교적 충실히 따른 예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참고는 하되 조선의 미감에 맞게 전체의 구도, 표제어, 도상을 차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沈自征(1707-1769)이나 金弘道(1745-약 1816) 의 그림 등에 나타나듯, 조선화 된 서호도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어 주목된다. 朝鮮末期(약 1850-1910)에 이르러서는 서호나 서호십경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며 은일사상과 문인의 이상적인 모델로 임포가 부각되면서 그와 관련된 매화서옥도류의 그림이 많이 그려지게 된다.

목차

I. 머리말
II. 西湖圖의 形式과 樣式的 특징
III. 西湖 文藝의 수용과 西湖圖의 傳來
IV. 朝鮮後期 西湖圖 類型의 확립과 다양화
V.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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