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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상균 (강원도청)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38호
발행연도
2012.3
수록면
81 - 114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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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행했던 유람관행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사대부들은 각각의 목적의식과 명분을 가지고 유람을 결행했지만, 그 이면에는 유람지에서 행해졌던 여러 가지 관행이 있었다.
사대부들은 유람을 하면서 지역 守令들의 접대를 받았다. 조선시대 유람객들 대부분은 전?현직 관료 출신 사대부였으므로 지방 수령들은 평소 교분과 상관없이 유람객의 지휘고하에 따라 이들을 예우하며 접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령들은 유람객에게 車馬費와 숙식제공, 술과 기생 등의 접대뿐만 아니라 유람을 함께 수행하기도 했다.
사대부들의 유람에는 술과 음악 등 遊興이 수반되었다. 유람은 일상의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의도가 공존하였으므로 술을 마시며 風流를 즐기는 것은 유람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었다. 樂工과 妓生을 데려고 다니면서 산중의 사찰 등에서 질탕한 유흥을 벌이기도 했다.
사대부들은 승려들을 유람사역에 동원하였다. 승려들이 숙식을 제공하고 수발을 드는 것은 기본이었다. 유람객의 가마를 메며 길잡이 역할을 하고, 종복들이 하는 잡다한 심부름까지 해야 했다. 지역민도 유람사역의 동원 대상이었다. 유람객들의 접대로 농사의 시기를 일실 하는 등 지역민의 폐해가 심하였다. 금강산과 같이 유람객이 수시로 찾는 명승지에 사는 지역민들은 자신의 지역에 금강산이 있는 것을 한탄하기도 했다. 유람객 접대가 싫어 유람객이 자주 찾는 유적지를 훼손시키기도 했다.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승려들과 지역민에게 유람사역을 시켰던 것이다.
이 같은 유람풍조는 여러 폐단들이 상존하고 있었지만, 조선시대 유람의 일반적 관행으로 굳어져 조선 말기까지 지속되어 졌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守令의 接待와 隨行을 받은 사대부의 유람
3. 遊覽地에서 즐긴 사대부의 遊興
4. 사대부의 僧侶와 地域民의 遊覽使役 동원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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