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尹裕淑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42집
발행연도
2012.8
수록면
415 - 461 (4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돗토리번 초닌(町人) 오야(大谷)가문과 무라카와(村川)가문의 울릉도 도항실태를 검토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두 가문의 유래, 17세기 초 울릉도에 도해하게 된 경위, 막부와의 관계, 돗토리번청과의 관계, 울릉도 산물의 활용, 울릉도 도해가 금지된 이후 두 가문의 행보 등을 규명하였다.
두 가문은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무사(武士)로 존재하다 돗토리번 요나고(米子)에 이주, 정착한 내력을 지니며 17세기 초까지만 해도 무사적인 성격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막부 관리 아베 마사유키(阿部正之)의 알선을 통해 막부로부터 울릉도 도항을 허가받아 울릉도 도항권을 독점하게 된다. 그들은 이 권한을 근거로 하여 쇼군 알현을 비롯하여 다양한 특권을 획득했고, 매년 울릉도에 교대로 도항하여 해륙의 산물을 채획했다. 그들은 울릉도의 전복을 쇼군과 막부의 요인들에게 헌상하는 한편 채획한 물품을 나가사키로 가져가 견직물, 虎皮, 砂糖등과 교환하여 일본 각지를 돌며 판매하기도 했다.
17세기 말 울릉도의 소속을 둘러싸고 조선과 외교문제가 발생하자 막부는 1696년 돗토리번주에게 “죽도도해금지”를 명하였다. 오야 가쓰후사(大谷勝房)와 무라카와 마사카쓰(村川正勝)의 대에 이르러 두 가문은 약 70년 동안 향유해 온 울릉도 도항의 권리를 상실하게 되었다. 울릉도 도항을 완전히 중단한 결과 경제사정이 어려워지자 돗토리번은 오야씨에게 요나고의 城下에서 어류도매업(魚鳥問屋)에서 수수료를 취득할 수 있는 권한을, 그리고 무라카와씨에게는 소금도매업(鹽問屋)의 수수료 취득권을 부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문 모두 울릉도 도항을 재개시키기 위한 운동을 오랫동안 계속했다. 또한 오야씨는 1740년 무렵 가업을 확대시키기 위해 ‘오사카 회미선업’, ‘나가사키 무역’에의 참가를 막부에 청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이후 오야 가문은 경제적인 부침을 거듭하다가 메이지 유신을 맞이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17세기 이전 울릉도와 일본의 관련성
3. 17세기의 오야(大谷) · 무라카와(村川) 가문
4. ‘죽도도해금지‘(1696) 이후 두 가문의 행보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3-349-003204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