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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경로 (한성대)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42집
발행연도
2012.8
수록면
5 - 73 (6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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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105인사건」 관련자 중 중 1913년 3월 경성복심법원(2심)에서 무죄로 풀려난 인물 가운데 국외로 망명한 19인의 事後 행적과 활동을 추적했다. 이들 105인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은 이후 행적과 활동을 통해 크게 독립운동에 가담한 인물과 친일로 경도되었던 인물로 구분할 수 있다. 출옥할 때 이들의 나이가 20~40대의 젊은 나이였기에 이후 이들의 행적이 매우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의 사후 추적을 통해 이들의 행적과 활동을 요약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이들이 출옥 후 해외 망명길에 나설 수 있었던 요인의 하나로 경제적 이유를 들 수 있다. 본 사건 피의자 가운데 국내에 남아 훗날 친일로 경도되었던 인물들에 비해 재산 정도가 매우 열악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事後 국외로 나간 19인의 망명지는 크게 3지역으로 구분된다. 국경을 접하고 있던 중국 동북부 안동현 지역으로 망명한 인물들은 대부분 대한청년단연합회와 한족회 활동 그리고 상해 임정 산하의 연통제와 관련된 행적과 활동이 주를 이루었다. 간도·노령지역으로 망명한 인물들은 서간도 柳河縣 三源堡와 龍井村 일대의 민족학교에서 교육사업에 종사하는 한편 만주일대 여러 독립군 단체에 가입하여 당시 산재되어 있던 독립단체를 통합하기 위해 결성된 全滿統一議會籌備會 등에 적극 참여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상해지역으로의 망명자는 대부분 상해 임정에 관계하며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임되어 국내와의 연락사무를 맡고 있다. 또한 상해지역 한인거류민단의 실무와 재정지원 활동을 주로 했다. 그러나 1923년 국민대표회의가 창조파와 개조파로 나뉘어 내홍을 겪는 과정에서 일부는 안창호의 흥사단계로 다른 한편은 만주 혹은 미주로 떠났다. 미주로 건너간 인물들은 주로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의 한인들로 구성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독립군자금 모금운동과 비행사양성소 연습생을 양성하는 일 등에 참여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상 19인의 국외활동은 망명지의 상황과 특성에 따라 여러 형태로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나 대체로 안창호의 운동노선을 견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목차

1. 머리말
2. 해외로 망명한 19인의 사회경제적 배경
3. 안동현 지역 망명자의 행적과 활동
3. 간도·노령 지역 망명자의 행적과 활동
4. 상해·미주 망명자의 행적과 활동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영문요약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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