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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국내에 흩어져 전해오는 인어 전설 자료를 한 자리에 모아 인어서사가 어떻게 전해지고 어떻게 변모되어 갔는지, 그 전승 양상을 살피고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본 것이다. 처음에 중국의 문헌에서 유입된 인어 이미지는 조선 중기까진 주로 정운의(情韻義)로써 한시에서 종종 활용되었다. 특히 교주(鮫珠), 교초(鮫?), 교실(鮫室)은 유선 작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유학자들도 상징어로써 즐겨 사용했다. 그러다가 조선후기에 이르면 한시보다는 각종 야담집에서 적극 수용되어, 풍부한 서사를 갖춘 채 전승되었다. 이시기에 이르면 예쁜 인어와 사람과의 만남이 강조된다. 무엇보다 작가가 인어 목격자에게서 직접 전해들은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인어의 실체를 믿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어는 바다에 실제로 존재하는 생명체로 인식되고 있었다. 오늘날에 이르러도 인어 이야기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전승되고 있었다. 이들을 종합한 결과 다음과 같은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인어 서사는 모두 바닷가 지역을 중심으로 전 지역에서 고르게 전승되고 있었다. 둘째,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인어는 서양의 인어 공주 이미지와 매우 흡사했다. 인어는 아저씨 혹은 부인(婦人)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어여쁜 여인이나 공주의 이미지로 바뀌어 있었다. 셋째, 인어는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존재로 나타났다. 초기의 인어는 눈물로 만든 진주나 물에 젖지 않는 비단을 선물하여 인간에게 은혜를 갚았다. 후대로 내려오자 은혜를 갚는 이미지는 그대로 전승되면서 그 능력이 훨씬 강화되었다. 요컨대, 우리나라 전설속의 인어는 일반적인 신화, 설화에 나오는 여성 주인공과는 다른 모습을 갖고 있었다. 고난의 수용, 인내와 희생이라는 틀을 넘어, 진주 눈물과 젖지 않는 비단 등을 만들어내는 생산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인간과 더불어 살아갔다. 이러한 인어는 서구의 인어와 분명히 차별되는 모습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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