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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민섭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38호
발행연도
2013.3
수록면
177 - 203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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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동경 조선기독교청년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1910년대 기독교 담론의 흐름과 ‘기독청년’의 탄생 배경을 살피는 데 있다. 1910년대 중반 「학지광」에서 시작된 기독교 담론은「기독청년」의 창간과 함께 구체화 되었다. 동경 유학생 사회의 구성원들은 민족 개혁을 위한 통일한 사상을 찾는 데 노력을 기울였고 기독교는 그에 적합한 사상으로 이해된다. 이 시기의 기독교 담론은 2.8독립선언에 이르는 주요한 사상사적 논의가 된다. 하지만 이광수를 비롯한「기독청년」의 비판적 필자들은 부형 세대 교역자들과 일부 기독교 청년회의 회원들이 미신화된 신앙에 빠져 있으며 근대과학과 시대사조에 무지함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았다. 기독교가 민족 개혁의 통일 사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이를 신앙의 타락으로 규정하는 보수적인 필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적극적으로 동조하거나 부분적 수용 의사를 밝혔다. 기독교 청년회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기독청년’이 그 과제를 해결할 주체로 선택된다.
‘기독청년’은 황성기독교청년회의 설립과 함께 이미 이전 시기에 탄생한 용어이다. 하지만 기독교 담론이 최고조에 이르던 1910년대 후반에는 단순히 기독교 청년회의 회원을 지칭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독청년’은 기독교 청년회의 일반 목적인 지덕체의 완전한 발달을 이룬 인물로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과학(신학문)을 수양한 신체 건강한 청년으로 요약된다. 민족 개혁과 기독교 사회화를 이룰 주체이자 동경 유학생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권장된 청년 이상향이었다.
1910년대 기독교 담론의 비판적인 필자들 중 일부는 2?8독립선언 이후 사회주의로의 전향을 시도한다. 이들은 기독교 청년회의 역할과 존재 이유에 대한 회의를 깊게 드러낸다. 생산된 담론과는 별개로 그것이 텍스트의 영역을 벗어나 실제로 구현되는 데는 실패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 동경 유학생 사회에서는 기독교 담론이 축소되고 그 자리를 사회주의 사상이 대체해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동경 조선기독교청년회는 1920년대에도 여전히「현대」,「젊은이」,「사명」등의 기관지를 순차적으로 발행하며 여전히 기독교 담론 생산과 수용의 담당기관으로 있었다. 이를 통해 1920년대 기독교와 사회주의와의 길항 역시 탐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목차

I. 머리말
II. 1910년대 후반 기독교 담론의 형성과 유통 양상
III. 기독청년의 탄생
IV.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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