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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용진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도시사학회 도시연구 도시연구 : 역사·사회·문화 제6호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73 - 103 (31page)
DOI
10.22345/kjuh.2011.12.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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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전반기에 프랑스 왕국은 국가체제를 조직해 나가기 시작했고 이는 다양한 유형의 저항은 물론 정치사회와의 의사소통을 산출하였다. 그런데 이 기간에는 국가행정과 왕권의 선전을 위한 왕궁의 건축 및 개축작업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두 가지 목적과 더불어 파리시는 왕국의 정치적 중심지인 수도로서 특별한 위상을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14세기 전반기에 세워진 왕궁들, 즉 시테 왕궁과 뱅센성, 루브르성을 정치사회를 향한 프랑스 왕권의 수사라는 차원에서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은 이러한 세 왕궁들의 상징적 가치를 매우 잘 드러내 보였다.
시테 왕궁은 필리프 4세 시기 사법과 재정 등의 행정을 위해 건축되었다. 행정적 전문화에 알맞은 다양한 공간들이 제공되었으며, 특히 ‘대전’과 ‘오월광장’ 은 프랑스 왕권을 국가체제의 지도자로 선전하기 위해 공중에게 개방되었다. 뱅센성은 장 2세와 샤를 5세 치세 하에서 왕국의 정의와 평화를 구현한 왕으로 솔로몬과 비교된 루이 9세를 재현하는 ‘기억의 자리’ 뱅센에 건설되었다. 거대한 망루와 정방형의 성채구조는 사법주권과 국가의 영속적인 견고성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13세기 초반에 필리프 2세에 의해 파리시 방어를 위해 세워진 루브르 성은 샤를 5세가 이미 왕국의 정치·행정 중심이 된 시테궁에서 떨어져 안정적인 왕실 거주지를 제공하기 위해 보수 및 개축하였다. 13세기 이래로 루브르 성은 파리시와 왕궁을 굽어다 보는 거대한 타워로 초월적 폭력인 군사주권의 상징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무장된 거주지에 샤를 5세는 더욱 섬세하고도 복잡한 궁정 생활을 위한 공간들을 재조직하고 구획해 나갔다.
이 세 왕궁들은 왕권이 지닌 양면을 보여준다. 그 첫째는 정치사회에 대한 응답인 통치성으로 이는 시테 왕궁으로 대변되며, 그 둘째는 통치성의 수사인 주권으로 뱅센성과 루브르성으로 대변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14세기 수도 파리의 도시풍경은 정치화되어 나간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필리프 4세(1285-1314): 시테궁(Palais de la Cite) 재건축
Ⅲ. 장 2세(1350-1364): 뱅센성(Chateau de Vincennes) 건축
Ⅳ. 샤를 5세 시기(1364-1380): 루브르성(Chateau du Louvre)의 증축
V. 나가며: 왕궁의 논리 - 주권과 통치의 공간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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