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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嚴基杓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39號
발행연도
2013.6
수록면
91 - 116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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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는 불교가 國是로 채택되면서 사찰과 승려들의 역할과 위상이 높았는데, 오늘날 수원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있어서도 사찰과 승려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현재 수원 지역의 불교사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사찰은 광교산 자락에 있었던 彰聖寺와 瑞鳳寺를 들 수 있으며, 추가적으로 奉寧寺 등이 있다. 이중에서 고려시대 수원지역의 대표적인 사찰은 광교산 자락에 있었던 彰聖寺였다. 창성사는 고려후기 眞覺國師 千凞(1307-1382년)가 머물고 입적한 사찰이었으며, 그의 부도와 탑비가 건립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현재 창성사지에 대한 조사 등이 이루어지지 않아 창성사의 구체적인 연혁과 위상 등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리고 창성사지의 원위치에 대한 문제도 재고의 여지가 있으며, 眞覺國師 千熙의 史蹟에 대해서는 관련 연구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창성사와 관련된 기록과 유적 등을 통하여 창성사의 연혁과 千熙의 史蹟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창성사는 수원 지역의 대표적인 사찰로 늦어도 고려시대 창건되었으며, 고려후기 眞覺國師 千熙가 머물면서 대대적인 중창과 함께 華嚴宗의 중심적인 사찰로 부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창성사는 조선초기 중요 사찰로 인식되었으나 불교계가 위축되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조선후기에는 일시적으로 법등이 유지되기도 했지만 결국 폐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광교산일대에는 많은 寺址가 전해지고 있는데, 고려후기 창성사의 위상과 역할, 현존하는 사지의 지형과 규모로 보아 본사격인 창성사의 원위치는 현재 법성사가 위치하고 사지 일대로 추정된다. 이 부분은 향후 전체 사지에 대한 정밀 발굴 조사가 선행되어야 명확하게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진각국사 천희의 출생지에는 그와 사당과 유허비, 봉분 무덤 등이 조성되어 보기 드문 사례에 해당된다. 따라서 향후 창성사지에 대한 구체적인 연혁과 원위치, 장례 등에 대한 조사 연구로 고려후기 불교계를 리드했던 진각국사 천희의 위상이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목차

요약
Ⅰ. 序論
Ⅱ. 彰聖寺의 沿革
Ⅲ. 眞覺國師 千熙의 生涯와 史蹟
Ⅳ. 結論
【Abstract】

참고문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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