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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은지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44집
발행연도
2013.4
수록면
85 - 11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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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이후 우리 민족의 정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영토를 일제에 빼앗긴 상태였기 때문에 국내의 국민에게 정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임시정부에서는 수립 직후부터 지리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내 연계사업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국내 주요지점에 행정망과 교통망을 설치하였고, 국민들과 연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임시정부는 국내 행정망을 통해 독립운동 최고통수기관의 역할을 위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바로 국내의 국민들을 총동원하여 만세시위로서 대대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대국민 만세운동은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제2차 독립시위운동’이라고 명명하였다. 2차시위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거사일은 일제의 최대 축제일인 천장절로 결정하였다. 많은 국민들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 2차시위를 체계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비밀결사와도 연계하였다. 국내의 철원애국단, 대한독립청년단, 조선민족대동단과의 협력이 이루어졌고 임시정부의 비밀외곽단체인 불변단도 2차시위에 참여하였다. 임시정부에서는 민심을 격앙시킬 목적에서 각종 포고문을 발포하는가 하면 선언서를 작성하였고 30명에 달하는 대한민족대표도 인선하였다.
그러나 민족대표에 대한 대동단의 이의가 제기되면서 임시정부와의 마찰이 일어났다. 양측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은 가운데 임시정부는 예정대로 2차시위를 전개하였고 대동단에서는 이와 별개로 만세시위를 진행하였다. 2차시위가 있기 전부터는 일제의 대대적인 단속도 일어났다. 결국 2차시위는 다소 산발적인 형태로 전개되었다. 전국적으로는 아니지만 임시정부의 국내 조직망이 잘 갖춰져 있는 평양과 평안북도 의주, 선천, 정주, 영변 등지에서는 충실히 2차시위가 진행되었다. 2차시위는 성공여부를 떠나 임시정부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국내 국민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할 것이다.

목차

1. 머리말
2. 임시정부의 제2차 독립시위운동 추진과 준비
3. 선언서 작성과 민족대표자 인선
4. 제2차 독립시위운동의 전개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영문요약

참고문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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