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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대원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44집
발행연도
2013.4
수록면
119 - 155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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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통의부에서 이탈하여 1924년 6월 26일 성립한 참의부는 출발부터 상해 임시정부의 산하기관임을 천명했다. 이후 참의부는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법명을 진동도독부, 독판부, 참의부로 개칭했다. 참의부의 성립과 법명 개칭은 통의부와의 갈등과 대립이라는 남만의 독립운동 정세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당시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해 정국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 국민대표회의가 결렬된 뒤 상해에서는 정부의 현상유지를 고집하는 정부옹호파와 이승만탄핵과 임시헌법 개정을 통해 정부를 개조하려는 개조파 사이에 정국쇄신 운동이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먼저 참의부 성립의 발단은 통의부 내의 분열에 있었지만 1923년 12월 백광운과 김원상의 상해 임시정부 방문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이들의 방문은 당시 이동녕내각의 학무총장 대리 겸 학무차장인 김승학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그 목적은 국민대표회의가 결렬된 뒤 정치적 어려움에 처해있던 정부옹호파들이 참의부의 지지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데, 의용군 측은 남만 독립군 단체의 임시정부 기치 하의 통일이라는 명분을 통해서 통의부를 비판하고 참의부 성립의 근거를 확보하는데 있었다.
그러나 참의부는 1925년 1월 진동도독부로 법명을 개칭했다. 이것은 정의부의 성립과 함께 1924년 12월 반통의부 입장을 취하며 자신들을 지지해 온 이동녕내각의 총사퇴라는 상해 정국의 변화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어 진동도독부는 의용군 제2중대장 최석순이 일제 경찰에게 피살되는 등 자체 세력이 약화하자 정의부와 일시 정전을 모색하면서 1925년 4월 다시 독판부로 법명을 개칭했다. 한편 개조파내각은 이승만탄핵과 함께 대통령제를 대신할 국무령제로 임시헌법을 개정하고 임시정부 강화의 방안으로 서북간도의 독립운동단체의 전선통일을 통해 지도력을 일신하려고 했다. 이런 임정의 새로운 방침에 따라 독판부는 그해 5월 서간도에 파견된 내무총장 이유필과 협의하여 독판부를 원래 법명인 참의부로 재칭하게 되었다.

목차

1. 머리말
2. 참의부의 성립과 상해 임시정부
3. 참의부의 ‘法名’ 개정
4. 참의부와 상해 정국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영문요약

참고문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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