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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문식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29집
발행연도
2013.4
수록면
72 - 101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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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단종과 그의 충절신이 복권되고, 그들에 관한 유적이 정비되며, 기록으로 정리되는 과정을 검토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 글은 특히 장서각에 소장된 〈越中圖〉가 작성된 시기와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숙종은 단종과 그 충절신들을 복권시켰고, 영조와 정조는 그들의 행적과 관련이 있는 유적을 정비하고 이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18세기 국왕들의 이러한 조치는 세조의 발언과 행동을 근거로 해서였다. 세조는 단종을 죽게 한 주인공이었지만 단종을 복권시키려다 사망한 死六臣들이 후일에 忠臣이 될 것임을 인정했다. 18세기의 국왕들이 단종과 그 충절신을 복권시키고 이들과 관련된 유적들을 정비한 것은 세조의 뜻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세조의 盛德을 드러내는 조치가 되었다.
18세기 국왕들이 단종의 충절신을 표창한 것은 자기 신하에게 君臣 의리를 지킬것을 요구하는 의미도 있었다. 특히 정조가 1791년에 내린 조치들은 사도세자의 복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소인 顯隆園을 참배하는 길에 단종의 충절신에 대한 기록을 조사하라고 명령했고 이는 결국 장릉 배식단의 설립으로까지 이어졌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복권을 기획하는 가운데 이런 명령을 내렸다.
1791년은 단종의 유적에 관한 기록이 전반적으로 정리된 시기였다. 이 해에 『莊陵史補』가 편찬되기 시작했고, 채색기록화인 〈자규루도〉와 〈월중도〉가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단종의 유적을 정비하고 관련 기록을 정리하는 작업에서는 영월부사 박기정의 활동이 주목된다. 그는 사육신 가운데 유일하게 후손을 남긴 박팽년의 후손으로, 장릉 배식단의 첫 번째 제사에 참여했고, 영월부사로 부임하여 단종 유적을 정비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였다. 그는 〈자규루도〉와 〈월중도〉에 나타나는 건물과 유적들을 모두 정비했고, 『장릉사보』의 편찬에는 교열자로 참여했다.
〈월중도〉는 단종의 모든 충절신을 표창하고 영월에 있는 단종 유적을 정비한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두려는 정조와 박기정의 의지가 담겨있는 작품이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단종 복위와 충절신의 표창
Ⅲ. 단종 유적의 정비
Ⅳ. 단종 유적의 기록과 〈越中圖〉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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