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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승태 (장로회신학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45집
발행연도
2013.8
수록면
105 - 159 (5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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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19년 3·1독립운동에 대한 선교사들의 대응을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던 개신교 선교사들은 국적별로는 대부분 영·미계 선교사들이었다. 일제는 무단통치 체제하에서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처음부터 무력을 동원하여 가혹한 탄압을 하는 한편, 이 운동을 재한 선교사들이 사주하여 일으킨 것으로 매도하고 선교사들까지 비난하였다.
일제의 선교사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언론을 동원하여 선교사들을 사주·선동자로 매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교사들을 회유하여 한국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시위를 중단하도록 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리하여 비밀리에 몇 차례 회합을 갖고 대책을 논의하였으나, 선교사들의 협력 거부로 3월 하순에 중단되었다.
선교사들은 일찍부터 대책을 협의하고 일제에 항의하며, 비밀리에 편지와 보고서를 친지나 선교본부에 보내 일제의 비인도적 3·1독립운동 탄압의 실상을 폭로하였다. 미국의 선교본부들은 미국기독교연합회의 동양관계위원회라는 조직을 통하여 대책을 의논하고 뉴욕주재 일본 영사관과 교섭하여 1919년 7월 초 일본정부의 개선 약속을 받아낸 후에야 선교사 보고서들을 발췌·편집하여 The Korean Situation이라는 소책자로 발간하여 언론에 공개하였다. 미북장로회 총회와 캐나다장로회 총회에서도 각각 5월 22일과 6월 12일 한국문제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하여 한국인들에게 공감을 표시하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며, 만행의 중단을 촉구하였다.
1919년 9월 사이토 총독이 부임하자, 재한선교사연합공의회에서는 그동안 준비해 온 일제 군경의 만행을 규탄하고 한국 시정 개혁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결의·인쇄하여 총독에게 제출하고 영사관과 선교본부 등 각지에 통보하였다. 동양관계위원회도 일제의 시정 개혁 약속의 이행을 감시하며, 이를 촉구하기 위하여 다시 여러 차례 회합을 갖고 1919년 11월부터 자료를 수집하여 1920년 5월 한국상황에 관한 두 번째 소책자를 발행 보급하였다.
사이토 총독은 재한 선교사들에 대해서 처음부터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각종 다화회·만찬회 등을 개최하여 선교들을 초청하고 회유하였다. 선교사들도 일제와 대립하게 되면 한국교회와 한국인 신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을 염려하여 “표면적으로 당국과 친선을 가장”하였지만, 일정한 심리적 거리를 두고 총독부의 개혁을 촉구하고 그 이행을 감시하였다. 결국 일제는 이러한 선교사들의 압력과 여론에 못 이겨, 또한 이들을 회유하기 위해서 점진적이기는 했지만 선교사들이 제시한 개혁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차

1. 머리말
2. 재한 선교사들의 3ㆍ1독립운동 인식과 초기 대응
3. 해외에서 기독교계의 대응
4. 선교사들의 시정 개혁 요구와 사이토 총독의 선교사 회유에 대한 반응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영문요약

참고문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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