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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권희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인문과학연구 제38집
발행연도
2013.9
수록면
259 - 28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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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초기 일본 사회에서는 ‘여자교육 불용(女子敎育不用)’이라는 관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일부 부유층의 자녀만이 소학교에 입학하였고 그 중에서도 극히 일부가 상급학교인 고등여학교(高等女學校)로 진학했다. 교과목은 서구형의 근대적 지식 습득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더라도 실생활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은 가사노동에 많은 시간을 빼앗겼고, 그런 점에 있어 특히 여자 아이들에게 학교 교육은 필요 없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었다. 여자 아이들은 장래 이른바 ‘현모양처(賢母良妻)’가 되기 위해 필요했던 재봉(裁縫)이나 요리(料理) 등은 가사를 도우며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여자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필수 교양이었던 좃쿄쿠(俗曲)는 학교교육보다도 중시되었다. 노래를 잘하고 못함이 여자의 인생의 결정하는 중대한 요소라 여기는 구래(舊來)의 연습(沿襲)이 메이지기에 들어서도 강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종래 메이지 신정부의 교육 수뇌들이 근대 일본의 학교 교육과정에 창가를 도입하고 실시했던 이유는 크게 이자와 슈지를 중심으로 하는 순수예술론적 입장에서 아동들의 정신과 육체의 발달을 위한 음악교육이라는 관점과, 근대 국민국가 형성기에 요구되는 국민의 심리적?정서적 교화 수단으로써 음악의 효용론적 관점에서 이를 이해해 왔다. 또한 음악조사계(音樂取調掛)를 중심으로는 국악의 창성(創成)과 속악(俗樂)의 개량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는 연구가 주류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필자는 본고를 통해 근대 여성의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창가교육의 의의를 고찰해 보았다.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기라고도 할 수 있는 메이지 초기, 어찌 보면 불요불급(不要不急)의 문화정책, 그 가운데에서 창가를 중심으로 하는 음악교육 정책이 그 어떤 제도나 인프라의 정비보다도 앞선 시기에 수립되고 시행되었다는 것은 메이지 신정부의 국민국가 형성에 있어 음악교육, 즉 창가교육이 그 어떤 필요성에 의해 특별한 사명을 띠고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 한다. 필자는 본고를 통해 학교교육에 창가를 도입하고 실시하려 했던 목적을 여성 교육과의 관계에 주목해 분석해 보았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는 말
2.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교육사적 의의
3. 창가(唱歌) 도입을 둘러싼 제설(諸說) 검토
4. 여성교육과 창가
5. 맺음말
참고문헌
〈日文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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