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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여호규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71
발행연도
2013.9
수록면
55 - 96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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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구려 도성의 의례공간과 왕권의 위상 변화를 고찰한 것이다.
고구려 초기에는 계루부 왕실의 궁실과 그 주변의 제의건물이 중추적인 의례공간의 위상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東盟祭가 최상위 국가의례였고, 그 제장인 도성 동쪽의 천연동굴과 압록강변이 최상위 의례공간이었다. 왕궁 중심의 위계적 의례공간 체계가 확립되지 않았는데, 桂婁部 출신 왕이 초월적 위상을 확립하지 못한 것과 연관된다.
3세기 중후반 중앙집권체제 정비와 더불어 국내성지를 중심으로 도성경관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초대형 왕릉을 조영하여 도성의 공간구조를 재편하고 太王의 초월적 위상을 과시하였다. 그러다가 4세기 말에 왕궁 주변에 國社와 宗廟를 새롭게 건립하여 국가 제사체계를 개편하면서 의례공간도 재편하였다. 이로써 王宮과 그 주변의 제의시설이 도성의 중추적인 의례공간으로 격상되었다.
6세기 중반 이후 귀족연립체제로의 전환과 더불어 왕권이 크게 약화되었지만, 왕궁 중심의 의례공간 체계는 지속되었다. 또한 매년 도성 외곽에서 정기적인 의례를 거행하면서 4郊 관념을 확립하고, 羅城 내부만 都城으로 인식하는 공간관념도 정립하였다. 다만 최고 실권자인 大對盧 선임을 위한 정치적 회합이나 대결이 宮 밖에서 전개된 데서 보듯이 의례공간과 권력행사의 名實이 부합하지 않는 양상을 띠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3세기 중반 都城의 의례공간과 東盟祭
Ⅲ. 4-5세기 都城 景觀의 형성과 儀禮空間의 재편
Ⅳ. 6-7세기 都城의 의례공간과 4郊 觀念의 확립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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