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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석근 (아산서원)
저널정보
한국양명학회 양명학 陽明學 제35호
발행연도
2013.8
수록면
263 - 290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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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범부 김정설과 단재 신채호의 역사인식, 특히 신라와 고구려를 바라보는 두 시선에 초점을 맞추어보고 있다. 민족과 민족주의 그리고 민족국가에 대한 인식,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쟁패와 통일, 화랑과 화랑도, 신라의‘삼국통일’및 김춘추(태종무열왕)와 김유신 에 대한 인식의 차이 등에 대해서 서로 상이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재 신채호는 민족을 중시할 뿐만 아니라 ‘보수와 사대’를 배격하고 외세에 대한‘자주와 독립’을 지향하는 민족주의적인 사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시각에서 그는 부여족, 특히 고구려(와 발해)를 높이 평가했다. 반면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신라의 삼국통일과 그 주역이라 할 수 있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난했다.
단재의 부여와 고구려족 중심의 역사인식과 사관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그리고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범부 김정설은 신라정신과 신라 삼국통일의 의미를 과감하게 밀고 나갔다. 단재의 역사인식에 대한 일종의 안티테제(antithesis)를 제시했다. 그는 신라의 삼국통일에 의해서 비로소 민족국가가 될 수 있었다고 파악한다. 김유신에 대해서도 “통일의 원훈인 용화 도령 김유신”이라 자리매김했다.
두 사람은 민족과 민족주의, 그리고 민족국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이해를 같이하면서도, 그‘민족’의 구체적인 내역?과연 민족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펼쳐놓은 역사의 지평을 우리시대에 걸맞게 더 밀고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바야흐로 창조적인 미래를 과감하게 열어갈 수 있는 ‘역사에 밝은 눈’?단재의 용어를 빌어 말한다면 ‘신안공’(新眼孔)?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고 있다.

목차

【요약문】
Ⅰ. ‘사맹’(史盲) : ‘역사의 장님’
Ⅱ. 〈朝鮮歷史上 1千年來 第一大事件〉, 혹은 단재 신채호
Ⅲ. ‘신라정신’의‘천명’, 혹은 범부 김정설
Ⅳ. ‘사명’(史明) : ‘역사에 밝은 눈’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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