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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창엽 (안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신학정보연구원 Canon&Culture Canon&Culture 제7권 제1호
발행연도
2013.4
수록면
131 - 154 (24page)
DOI
10.31280/CC.2013.04.7.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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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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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 II기 시대의 기마인상은 예루살렘에서 사용되었던 대표적인 유물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예루살렘은 특히 기마인상이 만들어지고 소비된 대표적인 도시였다. 그런데 이 기마인상이 페르시아 시대 예루살렘 지층에서는 지금까지 발굴되지 않고 있다. 이는 매우 독특한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의문에 대해 페르시아 시대에 일반 백성들이 거주했던 지역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페르시아 시대 예루살렘의 경계선의 변화 및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페르시아 시대의 예루살렘은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의 후원 아래에서 재개발되었다. 하지만 고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 기초부터 다시 새롭게 지어진 페르시아 시대의 예루살렘 성벽이 현재까지 발굴되고 있지 않고 있다. 다만 철기 II기 시대에 지어졌던 성벽이 재건되고 다시 사용되었다. 구 예루살렘의 유다인 지역에는 페르시아 시대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이 층위론적으로 발견되지 않는다. 기마인상과 같은 작은 유물은 하스모니안 시대와 헤로디안 시대에 건물들이 건축됨으로 말미암아 원래 위치해 있던 장소에서 치워지고 버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원래 상태대로 발견되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현재 구 예루살렘의 성벽이 지나가는 북쪽 지역에 해당하는 성전 산 위 이슬람 성전이 위치한 곳 인근 지역은 기마인상이 발견될 가능성이 농후한 곳이라 할 수 있다. 페르시아 시대에는 외적의 침입이 있지 않았기에, 이와 같은 곳에서 발굴이 이루어진다면 기마인상이 성전 산 부근에서 1차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예루살렘에서 많은 발굴이 이루어졌고, 여전히 발굴은 진행되고 있지만, 페르시아 시대 지층에 대한 고고학적인 자료가 충분하지 않기에, 페르시아 시대의 유물에 대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기에는 시기적으로 이르다. 지금까지 기마인상이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발굴될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치적 사건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이 훼파되고 난 뒤에는 기마인과 같은 유물은 더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결론내리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목차

1. 들어가기
2. 본론
3. 나가기
참고문헌
초록
Abstract

참고문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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