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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채미하 (경희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12호
발행연도
2013.12
수록면
1 - 40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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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 고대 儀禮공간인 王宮에서 다양한 의례가 펼쳐졌음을 살펴보았고, 이 중 국왕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즉위례와 조하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한국 고대 왕궁은 왕이 사는 궁궐로, 궁실(궁전) 등 다양한 시설물이 있었다. 특히 신라 문무왕은 ?주례?의 궁궐 원칙을 따라 월성을 수리하였다. 따라서 신라 정전인 조원전은 당 태극궁의 태극전에 평의전은 당의 외조 내지는 조당과 비교해 볼 수 있으며, 당 양의전에 해당하는 내전도 신라 왕궁에 있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왕궁에서는 즉위례와 조하례 등 다양한 의례가 행해졌다. 이 중 신왕의 즉위례는 선왕의 國恤기간 중 이루어졌고, 그 장소는 殯殿이었다. 빈전은 왕궁 안에 있었고, 신라 신문왕이 문무왕의 遺詔에 따라 柩前에서 즉위하였다는 점에서 신왕의 즉위례는 빈전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중국에서는 사신을 보내 선왕을 弔祭하고 신왕을 冊封하였는데, 책봉 장소는 정전이었다. 이러한 즉위례와 일련의 의례는 신왕이 왕권을 안정시키고 통치권을 장악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신라 진덕왕 5년 정월 초하루에 조원전에서 행한 하정례는 이후 儀禮化되었고, 정월 초하루의 하정례는 8월 15일의 조하례와 함께 신라의 大朝會였다. 이 중 정월 초하루의 조하례는 日月神에 제사를 지낸 후 이루어졌으며 8월 15일의 조하례 때 행해진 활쏘기는 燕射로, 당?고려?조선과는 구별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조하례는 冊命을 받은 왕실의 구성원인 태자와 왕후도 받았다. 이를 통해 국왕을 비롯한 왕실 구성원은 자신들의 기반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儀禮의 공간
Ⅱ. 卽位禮와 冊封
Ⅲ. 朝賀禮와 朝禮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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