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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70輯
발행연도
2014.4
수록면
37 - 71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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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전쟁 초기, 명군에 대한 군량 공급 문제는 조선과 명군 모두를 고민하게 한 문제였다. 명군이 조선에 진입하기 이전, 遼東으로 군사가 모이고 있을 때부터 군량 준비는 미비했고 공급에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명군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명나라가 지원한 군량은 義州까지만 운송되었다. 조선 내에서의 군량 운송은 조선이 담당하였다. 그러나 인력 부족 등으로 인해 운송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조선은 명나라에서 지원한 군량을 대신하여 우선 조선의 군량을 지급하기로 하였으나 충분하지 않았다. 군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명군은 군량 획득을 위해 한성으로 전진 할 수밖에 없었으나 곧 한계에 부딪혔다. 주력 부대인 기병의 말들이 많이 죽은 상태에서 전진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조선을 일본군으로부터 구원한다는 의무를 가지고 있었던 이상 명나라로 귀환할 수는 없었다. 명군 지휘부는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일본군과의 강화교섭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명군에 대한 군량 보급에 실패했고 조선의 입지는 크게 약해졌다. 또한 강화교섭의 자리에서 일본군이 명나라에 대한 조공을 내세우기 시작한 이상, 강화교섭에 막연히 반대할 수는 없었다. 조선은 주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해야했다. 일본군의 강화요청은 거짓이며, 조선을 침략한 일본에 대해 한번쯤은 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명군은 조선이 전쟁 준비를 하지 않은 채 명군에게만 전쟁을 맡긴다며 비난한다든지, 명나라는 조선과 일본을 ‘두 오랑캐’로서 똑같이 대우한다는 논리로 조선을 비난하고 강화교섭을 정당화했다. 조선은 이와 같은 논리에 반박하기 어려웠으며 또 다른 수단과 논리를 고안해야만 했다.

목차

<국문 초록>
Ⅰ. 서론
Ⅱ. 군량의 부족과 명군의 전략 변경
Ⅲ. 조선의 주전론과 한계
Ⅳ. 결론
<참고문헌>

참고문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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