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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용혁 (공주대)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05호
발행연도
2012.3
수록면
37 - 71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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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국과 류큐왕조의 교류는 공식적으로는 조선왕조 성립 3년 전인 1389년을 그 시작으로 잡고 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류큐와는 조선시대의 교류가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오키나와 우라소에 구스크 등지에서 출토한 고려기와는 류큐왕조와의 교류를 그보다 소급시키고 있다.
우라소에 요도레 출토의 고려기와의 연대는 1273년, 1333년, 1393년의 세 가지가 논의되어 왔다. 1990년대 수년에 걸친 우라소에 요도레의 발굴조사 결과는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英祖王統의 역사성과 관련한 문헌 사료의 객관성을 크게 높여준 것이다. 둘째는 英祖王의 역사적 존재를 뒷받침하는 한편으로 고려기와의 연대가 1273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자료의 과학적 분석으로 입증하였다는 점이다.
요도레의 건립과 승 禪鑑, 極樂寺조영도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요도레 뒤편 험한 지대에 極樂寺의 위치를 정한 것도 이같은 상호 관련성에 입각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점에서 英祖王代오키나와 우라소에 구스크의 極樂寺를 창건한 禪鑑스님은 고려인이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1273년 英祖王代고려 기와 기술자와의 관련은 양국의 지속적 교류의 일부라기보다는 一回的교류의 성격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英祖王代오키나와에 있어서 고려 기와 기술자의 존재는 이 시기의 특별한 국제정세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것은 몽골 침략하의 고려 정세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우라소에성(浦添城)의 조사와 고려기와
Ⅱ. 고려기와의 ‘계유년’에 대한 논의
Ⅲ. 우라소에성(浦添城)의 極樂寺 문제
맺음말 - 우라소에성을 통해본 고려 류큐의 교류사
ABSTRACT

참고문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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