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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해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05호
발행연도
2012.3
수록면
149 - 185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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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임진왜란기 경기 의병에 대한 기초적인 검토로서 경기의병의 특징과 양상을 살펴보았다. 임진왜란초기 경기는 37개 읍 가운데 강화?교동을 제외한 35개 읍이 피해를 입었다. 이는 임진왜란초기 피해가 컸던 영남보다도 나쁜 상황으로 경기가 일본군의 북상로와 퇴각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각종 자료에 나타난 경기 의병장의 이름은 16명 정도에 불과하나, 필자가 주목한 사항은 병마절도사나 수령과 같은 지휘관 휘하에 들어가 활약한 이름없는 의병의 활약이다. 경기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 것은 의병장의 부재와 함께 경기에 근왕과 도성회복을 위해 각지에서 모여든 군 지휘관들이 집결해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경기 의병의 특징은 1593년 1월 평양성 전투 이후 官軍과 연계하면서 활동이 두드러졌다는 점에 있다. 이 점은 더 밝혀져야 할 부분으로, 당시 경기의 관군이나 의병에게 도성회복이 중요한 당면 과제로 떠오르면서 의병과 관군의 연계가 긴밀해졌다고 생각한다. 이 무렵 영남에서 의병장이 관료가 되고 의병이 明軍의 支待를 위한 수송군으로 격하되면서 의병 활동이 쇠퇴하지만 경기에서는 오히려 의병이 관군과 연합하면서 활동이 더 살아나는 양상을 보였다고 판단된다. 이 점이 경기 의병의 특징이자 임진왜란 의병사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라고 할 수 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임진왜란초기 경기의 적침 상황
Ⅱ. 경기 의병과 의병장의 실태
Ⅲ. 경기 의병의 특징
맺음말
Abstract

참고문헌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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