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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

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인하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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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중종대 창설된 포도청은 기찰과 매복을 통하여 도성 내 발생하는 각종 범죄를 단속하였다. 본 논문은 도성 내 종로를 중심으로 설치된 좌우포도청과 사법관청의 공간적 배치를 유기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도성 내 포도청의 치안 기능과 그 특징을 밝히고자 하였다. 또한 조선후기 서울의 도시화가 진전됨에 따라 포도청의 기찰 공간이 삼강유역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포도청 활동 반경은 도성을 중심으로 城底十里로 국한되었기 때문에 포도청의 위치와 활동 구역은 서울의 공간적 특징을 고려하여 치안활동에 최적의 위치에 편재되었다. 捕盜廳舍는 종로를 중심으로 약 1.3Km의 거리를 두고 좌우로 배치되었다. 이 거리는 두 기관이 평시에 지정된 공간에서 활동하다가, 유사시 공간과 경계를 초월하여 상호 협력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좌우포도청은 각각 光化門?敦化門의 연장로에 위치하여 궁궐의 호위 및 경계의 역할도 담당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포도청의 업무는 사법?군사업무와 유기적으로 연계되기 때문에 이들 기관과의 업무연락이 신속히 처리되어야 했다. 따라서 좌우포도청과 사법?군사기구의 거리는 도보로 최소 약 6~7분에서 최대 약 23분가량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편 조선후기 서울은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유통경제가 활성화됨에 따라 도성 밖 인구 및 그 거주지가 확대되었다. 서울의 공간이 확대됨에 따라 도성 밖 기찰활동이 확대되었고, 특히 인구의 활성화가 두드러진 삼강(三江: 漢江?西江?龍山江) 구역에 대해 포도청의 기찰 및 병력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었다. 조선후기 포도청의 기찰구역이 城底十里까지 확대되고 있지만, 포도청의 주요 활동 구역은 여전히 도성의 치안에 중점을 두고 운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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