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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영은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한국학연구 제49집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129 - 150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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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란 이후 사회가 안정되면서 경제가 부흥하고 문화가 흥성하게 되면서 조선 왕실의 도자제작소인 분원 역시 제도적으로 안정되었다. 시장경제의 발달과 함께 부의 축적이 이루어지면서 사치품의 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사번이 허용된 분원은 새로운 소비층의 취향을 반영한 아름답고 화려한 도자기를 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정조는 검약을 강조하며 사치스런 자기의 생산을 금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같은 고급 기명인 유기의 사용을 억제하여 물가를 안정시키고자 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과정에서 북학파로 대표되는 문인들은 중국과 일본의 발전된 기술을 받아들여 조선의 요업기술을 발전시키고자 하였으나 요업의 발달을 위하여 선행되어야 할 사회경제의 안정에 대한 과도한 간섭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정조 사후에는 새로운 수요층의 취향을 반영하는 화려한 자기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2. 18세기 조선의 사회와 분원
3. 18세기 후반 조선의 도자생산과 기명에 대한 인식
4. 정조의 도자 정책
5. 正祖代 도자정책의 배경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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