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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태호 (명지대학교)
저널정보
명지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 미술사와 문화유산 미술사와 문화유산 창간호
발행연도
2012.11
수록면
165 - 19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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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과 불교의 만남은 삼국시대에 이루어졌다. 삼국의 대표적인 승려들과 연관을 보여주는 보덕암·장안사·건봉사·정양사 등의 창건설을 통해서 금강산과 삼국의 관련이 명확하게 보여진다. 신라이후 불국으로서의 금강산의 위상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으로부터 이성계의 신왕조 발원까지 고려시대에 가장 높았다. 이는 현존하는 고려시대의 석불과 석탑, 석등, 마애불 등을 통해 충분히 살펴진다.
금강산의 고려 초기 불교 유적으로는 정양사 삼층석탑과 석등과 석불, 금장암 사사자 삼층석탑과 석등을 꼽을 수 있다. 금장암 사사자 삼층석탑과 공양인물상 석등은 지리산 화엄사의 양식을 모방한 형식이다. 정양사 삼층석탑은 신라식 석탑 계열로 보이나, 석탑과 석등을 한 무리로 제작한 것으로 미루어 제작 시기는 고려 초인 10세기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석등의 경우, 신라의 늘씬한 팔각형 석등과 달리 육각형의 특이한 구조이다. 또한 정양사의 약사전에는 각형의 대좌위에 모셔진 석불이 있다. 허리를 곧게 세운 석불의 자세와 법의와 주름, 상호의 투박한 안면 표정에서 고려 초기의 형식미를 볼 수 있다.
금강산에서 가장 전형적인 고려 불상조각으로 고려 전기의 묘길상을 들 수 있다. 앉은키가 15m, 얼굴과 손발 길이가 각각 3m가 넘는 크기의 묘길상은 10~11세의 전형적인 돌부처, 거불 양식을 따른 마애불이다. 묘길상 앞에는 3.6m 가량의 석등이 놓여 있는데,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사각석등의 가장 단순한 형태미를 지니고 있다.
고려 후기에는 고위관료나 문인들을 비롯해 서민들까지 금강산을 찾는 사례가 부쩍 증가했다. 또한 금강산의 명성은 멀리 원나라까지 알려져 금강산도를 원 사신이 가져가거나, 원 왕실에서 금강산 사찰에 불공을 올리는 일도 빈번해졌다. 또한 금강산에서는 고려 말 금동불들이 출토되었는데, 고려 후기에 유행한 원나라 불교 라마교 형식의 불상을 연상케 한다. 표훈사 입구 길가에는 큰 바위 한 쌍이 나란히 서있다. 오른쪽 암벽 전면에 3.7m 높이의 삼불입상이 부조되어있다. 하트형 연꽃잎의 족좌, 얼굴이 크고, 얕은 부조감을 살리기 위해 세심하게 다듬은 눈매와 일자형의 꼭 다문 입술표현 등이 인상적이다. 금강산 월출봉에서 출토된 이성계 발원의 사리기는 조선시대로 전환되는 고려 말 백자들의 새로운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은제도금 라마탑형 사리기〉는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고려 후기의 새로운 형식을 잘 보여 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불국토로 자리잡 힌 금강산
Ⅲ. 고려 전기 불교유적
Ⅳ. 고려 후기 불교유적
Ⅴ. 맺음말-현대까지 이어진 금강산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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