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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洪性益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24호
발행연도
2012.4
수록면
263 - 310 (4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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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기에 중국에서 전래된 南宗禪은 신라사회와 불교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특히 석조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불상과 탑을 중심으로 조성되던 석조미술은 浮屠와 浮屠碑라는 새로운 조형물이 탄생하게 되고 신라와 고려사회는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전국적으로 조영되기 시작하였다.
부도와 비는 일정한 격식을 갖고 조영되고 있다. 초기선승들은 자신이 개산한 사찰에서 입적하고 입적한 사찰에서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장례를 치은 사찰에 부도를 세우며, 제자들이 임금에게 비를 세우게 해줄 것을 주청하여 시호와 탑호를 받아 건립하게 된다. 또한 부도와 비를 건립하는데 비와 부도를 東-西로 동일한 공간 내에 세우거자, 비를 사찰 주변에 위치하게 하고 부도는 대체로 사찰 뒤편에 높은 곳에 세우는 예를 따르고 있다.
굴산사는 범일이 굴산산문을 개산한 사찰로 그가 주석하고 입적한 사찰이다. 이 寺址에는 신라말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부도 1기가 북서쪽 산록에 현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석조 조형물의 이름이 「굴산사지 부도」이다. 이는 부도 주인공의 이름을 명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寺名을 浮屠名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굴사사지에 있는 부도의 주인공을 확인하고자 작성하였다. 현재까지 굴산사의 부도를 범일의 부도라고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먼저 살펴보고 구산선문 초기 선승들의 수행사찰·입적사찰·부도와 비가 건립되는 사찰을 살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굴산사지에 현존하는 부도의 주인공이 통효범일임을 밝혀 보고자 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浮屠 名에 대한 연구사 검토
Ⅲ. 九山禪門 승려의 부도와 비 건립
Ⅳ. 굴산사지 부도와 범일 부도의 상관성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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