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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부오 (백석고등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23호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191 - 234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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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건국기사에 반영된 자료의 층위를 바탕으로 居西干期 사로국의 지배구조에 대한 이해의 단서를 마련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거서간조는 다양한 저본을 누층적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B.C.2세기 말~A.D.1세기에 걸친 거서간의 탄생과 재위 과정이 집약되어 있다 《삼국유사》는 고려 초까지의 6부에 초점을 맞춰 건국과 관련된 저본을 상대적으로 다양하게 활용했다. 두 자료에 반영된 가공의 요소를 가려내 사로 6촌과 거서간기의 실제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B.C.2세기 말 이후 경주분지에서는 토착세력인 고허촌의 소벌공 집단이 소읍락들로 구성된 蘇代聯合體를 이끌었다. 소별공 집단은 이 단위정치체를 기반으로 上位 干層을 형성했고, 나머지 촌장으로 기록된 세력은 대체로 중하위 간층을 이루었다. 이후 朝鮮遺民이 새롭게 정착하면서 유이민 세력이 상위 간층을 형성했다. 건국기사의 사로 6촌은 토착세력과 유이민 세력을 포함해 경주 분지에서 성장한 일부 상위 간층과 중하위 간층을 가리킨다. 이들은 소읍락 내에서 우세한 가계집단을 대표했다. 경주분지 외곽에서는 다수의 단위정치체가 존재했고, 자치적 기반을 유지한 토착 간층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컸다.
조선유민이 증가하면서 경주분지와 그 외곽에서는 상호 이해관계를 조절할 필요성이 생겼다. 기원전후 철기의 생산ㆍ유통이 증가하면 그 필요성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는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던 경주분지의 중심지 기능을 부각시켰다. 그 중에서도 남산 서록 일대의 혁거세ㆍ알영 등으로 상징되는 유이민 집단은 서북한 지역에서의 정치적 경험과 군사적 기반을 바탕으로 간층 사이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경주분지의 토착 상위 간층이 이들의 우위를 인정하면서 중하위 간층과 함께 거서간을 추대하였다. 경주분지 외곽의 간층은 자치권을 유지한 채 거서간의 출현을 용인했다. 사로 6촌의 거서간 추대 기사는 이상의 과정을 경주분지로 한정시켜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거서간의 출현은 1차국가적 요소를 기반으로 2차국가가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거서간기 기사에 언급된 6부는 거서간의 지배대상으로서, 그리고 간층의 근거지로서 이중성을 띠었다. 사로국의 지배권은 복수의 가계집단으로 구성된 고허촌의 거서간 집단과 알영 집단을 중심으로 안정되었다. 고허촌은 양산촌과 함께 중고기에 와서 각각 사탁부와 탁부라는 신라 국가의 중심공간으로서 확인된다. 이는 신라 6부의 연원을 파약하는 데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자료의 층위로 본 건국기사의이해방향
Ⅲ. 干層의 세력기반과 斯盧 6村
Ⅳ. 居西干의 출현과 干層의 동향
Ⅳ. 맺음말 - 居西干期 六部 기사의 의미
【참고문헌】
日文抄錄

참고문헌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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