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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Chang-hee Nam (Inha University)
저널정보
한국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보 한국정치학회보 제48집 제3호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73 - 90 (1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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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 운동에 참여했던 전북지역 농민을 중심으로 1920년대에 전북지역을 기반으로 교세가 확장된 보천교라는 신흥민족종교 세력의 활동에 대한 기록들은 개벽사상의 영향력이 일제 하에도 여전히 존재하였음을 시사한다. 구리골 태을주 수행가들에게 전파된 후천개벽의 비젼은 당시 일제의 식량수탈 과정의 희생자였던 전북지역 민중들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파고들었다. 일본의 저발전된 농업부문 생산력을 보충하기 위해 시작된 총독부의 식민지 조선으로부터의 식량 수입은 저임금 수출의존형 일본 정치경제체제의 작동 메커니즘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그런데 전북지역의 소작농의 증가와 지속적인 궁핍화에도 불구하고 강도높은 식민지수탈구조가 타지역과 달리 전북지역에서는 20년대에 폭력적 항일운동 확산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일반적인 농민저항운동의 패턴에서 이탈하는 이와 같은 특이한 현상은 당시 전북지역을 중심으로 한 태을주 수행 종교세력의 비폭력저항 교리와 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일제의 머지않은 패망에 대한 보천교 교단의 신념체계 역시 그들의 소극적 저항 행태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궁극적 해방과 후천평화 세계의 필연적 도래라는 교리의 내면화 과정은 20년대 일제와의 기묘한 공존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조선총독부는 보천교 교리의 독립의식과 자주성에 위협을 느끼고 30년대 중반부터 가혹하게 탄압하여 보천교 등 범 구리골 민족종교 단체를 공중분해시키고 중일전쟁의 팽창주의 정책에 박차를 가하였다.

목차

Abstract
Ⅰ. The Korean Peasants in North Jeolla Province after the Tonghak Revolt
Ⅱ. Japan’s Rice Extraction Program in Occupied Korea
Ⅲ. Spreading the Idea of “Cosmic Change and Eternal Peace” inJapanese Occupied Korea
Ⅳ. Views of Japanese Imperialism among his Followers
Ⅴ. An Irony and the Significance of their Belie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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