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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지석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통일인문학 통일인문학 제58집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279 - 306 (28page)
DOI
10.21185/jhu.2014.06.58.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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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조선인의 북한 귀국운동은 1959년에 시작되어 1967년에 일시 중단되었다가 1971년에 재개되어 1984년까지 진행됐다. 특히 귀국자가 집중된 기간은 1967년 이전까지로 1959년 12월 14일 제1차선이 출항한 이래 1967년 제154차선까지 약 8년간 88,360명이 귀국했다. 당시 재일조선인의 북한 귀국사업에 호응해 북행을 택한 재일조선인 화가는 대략 15명 내외로 추정된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김승희, 김보현, 표세종의 경우에서 보듯 북한미술계에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오늘날까지도 북한미술의 원로로 대접받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196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북한미술의 주류에서 밀려나 잊혀졌다. 후자의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가 바로 조양규다. 이미 1950년대 후반 일본 미술계에서 영향력있는 작가로 주목받던 조양규는 1960년 북한으로 갔고 1960년대 중반까지는 귀국을 택한 재일조선인 화가의 대표자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유일사상체계가 확립되는 1960년대 후반에 이르면 이 작가의 작품과 글, 더 나아가 이름조차 북한의 미술매체에서 사라진다. 그 이유를 우리는 그가 북한에서 발표한 작품과 비평텍스트의 내용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그는 과거 일본에서 자신의 작업을 지탱하던 비판적 리얼리스트의 관점으로 북한을 바라봤다. 즉 그는 주어진 현실 속에서 자신이 느낀 생활적 진실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조양규의 관점에서 만약 사회주의리얼리즘의 가르침에 따라 화가가 ‘자연의 아름다운 정서’를 나타내야 한다면 그 아름다운 정서는 화가가 직접 체험하고 그에 적합한 스찔을 부여하기 위해 자유롭게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여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의 북한미술계는 이미 “조선화를 토대로 하여 미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김일성)로 대표되는 도그마를 무비판적으로, 그리고 즉자적으로 수용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고 조양규의 비판과 요구를 귀담아들을 만한 유연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분방한 사고와 대담무쌍한 새로운 시도들!”에 대한 조양규의 마지막(!) 요구는 공허한 외침이 되고 말았다. 비판적 리얼리스트의 사회주의 리얼리스트로의 변모는 순조롭지 않았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북으로 간 재일조선인 미술가들
3. 비판적리얼리즘과 사회주의리얼리즘 : 조양규와 표세종의 경우
4. 조양규의 논리: 자유분방한 사고와 대담무쌍한 새로운 시도들!
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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