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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효진 (이화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82號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117 - 14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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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芝草花文 靑畵白磁는 기면에 청화안료로 공간을 일정하게 구획하고, 그 안에 도안화된 영지와 초화문양을 번갈아 장식한 것이다. 명대 선덕연간 관요양식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청대 이후 景德鎭 민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근대기까지 福建, 湖北 일대 등 남방민요에서 독자적인 특징을 나타내며 전개되었다. 따라서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는 관요와 민요, 경덕진과 기타 지방 민요와의 관계를 고찰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민간용 도자라는 특성 때문에 연구 대상으로써 주목받지 못하였다. 또 한국과 일본의 소비유적에서 빈번히 출토가 보고되나 정확한 계통과 전파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었다. 이에 본 논문은 전세품을 비롯해 새롭게 확인된 기록과 발굴 자료를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영지초화문 청화백자의 연원과 제작배경을 비롯해 지역별 조형 특징 및 지역 간에 각기 다르게 전개되는 양상과 그 성격을 구체적으로 고찰하고자 하였다.
영지초화문 청화백자의 연원은 경덕진 어기창유적 선덕연간 층위 출토품으로 밝혀진 바 있다. 그런데 청궁이 소장한 골동 목록에서도 이와 동일한 계통의 기물이 확인되어, 청 황실이 명대 관요품을 지속적으로 소장하면서, 모방품을 제작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한편 관요양식에 기원을 두는 영지초화문 청화백자가 민간에서 대유행에 이르게 된 것은 관탑민소와 관요 낙선품을 민간에 판매 처리하는 방식이 실행되며 가능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대 중기에 이르면 경덕진 민요 뿐 아니라 복건 일대 민요에서도 활발히 생산되었는데, 경덕진 자기가 전국으로 유통된 동시에 장인들이 남방으로 이주하여 남방 일대 민요에서도 경덕진양식의 도자기가 생산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과 일본에서 발견되는 중국산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는 대부분 18세기 중반 이후 제작된 경덕진 민요산이 두드러졌으며, 각 지역에서 모방 생산이 이루어졌으나 제작주체 및 소비계층이 달라지면서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조선의 경우 왕실내지 관청과 연관되는 장소에서 중국산의 소비가 빈번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산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는 관요인 분원리요를 중심으로 생산되며 가장 고급의 소비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한양에서 폭넓게 소비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18세기 중후반 이래 肥前 일대 요장을 시작으로 瀨戶, 美濃 요장에서 민간용 일상기명으로 생산되었으며, 한국 소비유적에서도 근대식 기법으로 제작된 일본산이 발견되었다.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는 명대 선덕 관요양식에서부터 일본에서 근대식기법으로 제작되기까지 500여 년간 지속되며 각 지역에서 각기 다른 성격으로 생산, 소비된 사실을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고자 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영지초화문 청화백자의 연원과 제작배경
Ⅲ. 영지초화문 청화백자의 조형 특징
Ⅳ. 영지초화문 청화백자의 조선·일본 전파와 의의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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