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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희진 (울산대곡박물관)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정신문화연구 2014 여름호 제37권 제2호 (통권 135호)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7 - 34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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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사지는 경주 남산 금오봉 정상 가까이에 위치한 곳으로 『삼국유사』 권4 「의해」 제5 <현유가, 해화엄>조에 처음으로 보인다. 이에 의하면 통일신라 경덕왕대(재위 742?765)의 승려 태현과 미륵장육상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사찰로 유명하다. 특히, 용장사지의 불상 중 석조여래좌상은 독특한 수인과 대좌 형식, 기록에 언급된 장육미륵상 등으로 연구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을 중심으로 특징과 제작 시기, 도상과 복원 문제에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석조여래좌상의 비례라든지, 승각기 띠매듭, 가사끈, 오른쪽 무릎 밑으로 내려오는 역삼각형 대의 자락 그리고 상현좌 등을 통해, 8세기 불상에서 볼 수 있는 표현인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양식적 특징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무릎 앞으로 늘어진 역삼각형 대의 자락은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에서부터 나타나는 것으로 8세기 후반 이후의 경주 남산 삼릉계 불상들의 시원적 특징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여래상이 앉아 있는 대좌를 덮은 상현좌의 치맛자락은 통일신라시대 7세기나 8세기 전반기의 상현좌와는 다르며, 이러한 상현좌는 중국 당대 8세기 전반기 작으로 추정되는 금강봉사와 송광사 소장목조불감 본존불의 양쪽 무릎에 흘러내리는 상현좌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7세기에서 8세기 전반기에 보이는 표현과는 달리 새롭게 수용된 양식적 특징임을 알 수 있다.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의 실제 접은 듯 부드럽고, 사실적이면서 자연스러운 옷 주름의 표현등으로 볼 때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 경덕왕대인 8세기 중엽으로 볼 수 있다.
도상으로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미륵여래로 추정하였다. 그 특징으로는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의 좌우가 바뀐 수인과 3층으로 형성된 대좌 형식인데, 수인의 경우 중국과의 비교를 통해 비슷한 수인이 서위대부터 등장하여 당까지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었고, 미륵여래상에 차용될 수 있는 수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륵여래상의 도상적 근거로서 『불설미륵하생경』, 『불설미륵대성불경』의 화림원 용화 3회 설법과 용화3회 설법 후 시두말성(翅頭末城)에서 여덟 가지 신통력을 보이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삼국유사』 권4 「의해」제5 <현유가, 해화엄>조에 기록된 경덕왕대 유가계 승려 태현과 관련된 미륵장육상으로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은 미륵여래상으로 볼 수 있고, 양식적인 면에서는 8세기 전반기의 특징을 이어오면서 새롭게 유입된 표현 기법을 수용한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용장사지의 내력과 유물의 현상
Ⅲ. 석조여래좌상의 특징과 제작 시기
Ⅳ. 도상 문제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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