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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李旺茂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57호
발행연도
2014.11
수록면
289 - 32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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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순종은 선제인 고종처럼 자주 순행을 거행하였다. 순종은 전례처럼 종묘와 능침의 제사를 집행하기도 했지만, 한반도의 남부와 서북부를 기차로 순행하는 새로운 사례를 만들기도 하였다. 순종은 일제강점기에도 순행을 지속하였다. 조선 총독 정치하의 李王으로 허명의 위치에 있었다고 하지만, 조선왕실의 의례는 지속해서 주재한 것이다. 종묘의 정기적 제사, 선대 왕과 왕비의 능침 및 사당 제사를 親行하였다. 조선왕실의 정례적인 의례 행사 이외에 총독부와 공공기관의 정기적인 방문 및 권농행사를 비롯한 공공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영국 맥도날드 대사와 같은 경성 주재 외교사절단과 접촉을 가지기도 했다. 더욱이 1917년 6월의 일본 동경 방문인 東上을 목전에 두고 함흥 본궁에 행차하여 선조의 묘와 사당을 봉심하는 등의 다양한 외부 행차를 하였다.
그런데 순종이 1917년 일본에 행차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며 정치적인 의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순종은 식민지 조선의 이왕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조선 사회에 큰 영향력을 지닌 상징이었다. 이점은 고종 승하시 독살설로 격화된 3.1만세운동에서도 보인다. 이외에 무엇보다 충효를 동일시하던 조선인들의 의식에 새로운 군신관계인 천황-순종-조선인으로 이어지는 인식을 주입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천황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기 위해 민족적 정체성을 포기시키지 않는 차원에서 신민관계를 연결시키는 매개로 순종과 같은 구황실의 왕족이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배경에서 순종의 일본 동상이 지니는 의미를 파악하고자 했다. 일제강점기에 순종이 단순한 허수아비가 아닌 조선을 상징하는 정치적인 인물로 존재하였음을 왕실 의례 거행의 과정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또한 동상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행행 의례의 성격에도 주목하였다. 순종의 행차가 조선시대부터 대한 제국기로 이어지던 행행 의례의 지속이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국가의례를 통한 일제의 통치술을 밝히려고 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일본 東上의 배경과 진행
3. 행행의례에 시각화 된 순종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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