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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기원전 37년 주몽의 건국에 앞서 고구려라는 역사적 실체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현도군은 고조선 멸망의 후속 조치로써 설치되었는데, 그 소속 현으로 고구려현이 두어진 것은 군현 설치 이전에 고구려라는 토착세력이 존재하였음을 확인시켜 준다. 현도군은 주변의 군현들과 비교하여 다른 특징을 보이는 점이 주목되는데, 그 특징은 관할하던 토착사회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고구려는 일찍이 대단위의 정치체를 이루고, 고조선의 영향력 밖에서 독립된 세력으로 존재하였다. 고조선 멸망 이후 고구려 지역에도 현도군이 추가로 설치되었지만, 漢과의 타협에 의해 군현이 설치되어 대군장의 지배구조가 온존할 수 있었다. 고구려는 속국과 유사한 형태로 현도군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독립국으로서 외번과 같은 대우를 받았을 뿐 사실상 내치의 대상은 되지 못하였다. 고구려현 역시 토착 고구려국의 지배 주체가 아닌 외교창구 정도의 기능을 담당하였음을 확인하였다.
한편, 계루부가 고구려 왕실을 장악한 때가 기원전 37년을 전후한 시기였음을 고려하면, 현도군 설치 당시 고구려의 주도세력은 소노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는 소노부 주도시기부터 이미 국왕을 중심으로 국가 차원의 의례를 주관하고, 漢의 관복이 사여될 정도의 체계화된 관료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군현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에 직면해서는 적극적으로 대항하여 군현을 축출하고, 나아가 군현의 영향력에서 이탈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양자의 관계는 책구루를 설치하는 것으로서 재개되었지만, 예군하지 않는 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漢 중심의 세계질서를 형식적으로나마 유지하려는 미봉책이었다.
고구려는 일찍이 대단위의 정치체를 이루고, 고조선의 영향력 밖에서 독립된 세력으로 존재하였다. 고조선 멸망 이후 고구려 지역에도 현도군이 추가로 설치되었지만, 漢과의 타협에 의해 군현이 설치되어 대군장의 지배구조가 온존할 수 있었다. 고구려는 속국과 유사한 형태로 현도군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독립국으로서 외번과 같은 대우를 받았을 뿐 사실상 내치의 대상은 되지 못하였다. 고구려현 역시 토착 고구려국의 지배 주체가 아닌 외교창구 정도의 기능을 담당하였음을 확인하였다.
한편, 계루부가 고구려 왕실을 장악한 때가 기원전 37년을 전후한 시기였음을 고려하면, 현도군 설치 당시 고구려의 주도세력은 소노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는 소노부 주도시기부터 이미 국왕을 중심으로 국가 차원의 의례를 주관하고, 漢의 관복이 사여될 정도의 체계화된 관료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군현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에 직면해서는 적극적으로 대항하여 군현을 축출하고, 나아가 군현의 영향력에서 이탈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양자의 관계는 책구루를 설치하는 것으로서 재개되었지만, 예군하지 않는 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漢 중심의 세계질서를 형식적으로나마 유지하려는 미봉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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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국문 초록
- Ⅰ. 머리말
- Ⅱ. 고조선 세력권의 군현 편제와 현도군
- Ⅲ. 토착 고구려와 현도군 고구려현
- Ⅳ.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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