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張熙興 (대구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46호
발행연도
2014.11
수록면
311 - 341 (3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청도 내시가는 서울·경기 지역이 아닌 지방(경상북도 청도)에 거주지를 두고 가계를 계승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재까지 밝혀진 유일한 내시 가문이다.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지방에 거주지를 둔 내시 가문으로 현재까지 최초로 발견된 1800년대 작성된 3장의 호구단자이다.
가문의 형성 시기는 1500년대 전후로 추증된다. 시조의 ‘不知’를 통해 알 수 있는 존재는 연산군대 최결이라는 내시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김세필이라는 음신이 남은 고자를 궁중에 들였다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그러나 수양 사촌과 또 다른 양자인 이세윤은 처벌되지는 않아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은 가문의 형성이 1500년대라는 구전과 비슷하다. 이후 약 400년간 지속되었다.
가문의 연속성에서 중요한 것은 入養의 문제이다. 새로 발견된 호구단자에서 내시 가문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입양을 통한 가계 계승을 알 수 있는 養父와 養子를 모두 기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통 1명의 異姓 양자를 통해 가계를 계승한 것으로 보이지만 2명인 경우도 볼 수 있다.
또한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을 보이기 위하여 부인의 나이 역시 남편과 비슷하고, 자식과의 적절한 나이 차이를 보이는 등 일반적인 내시가문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입양한 자식의 이름을 개명하거나, 항렬을 맞추는 등의 모습을 통해 가문의 계승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청도 지역과의 관련성과 지속성 문제이다. 내시 가문이 유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속적인 벼슬과 호구단자에서 보이는 재산(노비) 정도이다. 이것은 양자를 통한 가계 계승에 중요하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죽은 이후 청도 내시가 주변에 무덤을 조성하였다는 사실, 1800년대 가옥을 수축하여 거주하였다는 것, 1800년대 이후 작성된 3장의 호구단자에서 거주지가 청도로 되어 있는 것등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내시가문이 형성 유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도에 존재하였던 이유는 아마도 중앙으로 공급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상으로 청도지역을 중심으로 형성 지속된 김일준가는 서울·경기가 아닌 지방에 거주하였던 내시 가문 가운데 현재까지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내시가문이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家門의 形成과 始祖의 ‘不知’
3. 戶口單子의 分析과 家系 繼承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3)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6-380-001305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