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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고려시대에는 북방 민족인 양수척이 있었는데, 도살ㆍ수렵ㆍ유기장ㆍ잡희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기생도 이들 가운데서 나왔다. 조선시대에도 이들의 후예들이 계속 도살ㆍ수렵ㆍ유기장ㆍ잡희를 담당했다. 그래서 남한 지역의 재인들은 주로 세습무계 출신이었지만, 세습무가 없는 황해도와 평안도에서는 북방 민족인 양수척의 후예들이 재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박은용의 논문과 『朝鮮の聚落』 中篇 구백정부락 조를 통해, 재인촌은 바로 양수척의 후예임이 드러난다.
서울에 거주하면서 본산대놀이를 하던 연희자들은 성균관의 노비인 반인이다. 이들은 서울 관청의 관노였기 때문에 서울에 거주할 수 있었다. 여러 기록들, 특히 『승정원일기』 숙종 8년(1682) 민정중(閔鼎重)의 상소는 “나라의 풍속은 (반인들이) 소 도살과 악(樂, 공연예술)으로서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라고 하며, 반인을 전문적 연희자로 밝히고 있다. 이 기록은 『예종실록』 1년(1469) 양성지의 상소문 가운데 조선의 재인과 백정은 고려시대 양수척의 후예로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풍습과 짐승을 도살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내용과 그대로 부합된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반인들 가운데 재인과 백정, 즉 수척도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 주면서, 반인이 서울 본산대놀이의 연희자로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을 밝혀 준다.
상세정보 수정요청해당 페이지 내 제목·저자·목차·페이지박은용의 논문과 『朝鮮の聚落』 中篇 구백정부락 조를 통해, 재인촌은 바로 양수척의 후예임이 드러난다.
서울에 거주하면서 본산대놀이를 하던 연희자들은 성균관의 노비인 반인이다. 이들은 서울 관청의 관노였기 때문에 서울에 거주할 수 있었다. 여러 기록들, 특히 『승정원일기』 숙종 8년(1682) 민정중(閔鼎重)의 상소는 “나라의 풍속은 (반인들이) 소 도살과 악(樂, 공연예술)으로서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라고 하며, 반인을 전문적 연희자로 밝히고 있다. 이 기록은 『예종실록』 1년(1469) 양성지의 상소문 가운데 조선의 재인과 백정은 고려시대 양수척의 후예로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풍습과 짐승을 도살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내용과 그대로 부합된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반인들 가운데 재인과 백정, 즉 수척도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 주면서, 반인이 서울 본산대놀이의 연희자로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을 밝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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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연희자로서의 수척
- Ⅲ. 연희자로서의 반인
- Ⅳ. 본산대놀이와 반인
- Ⅴ. 결론
- 참고문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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