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근대 일본 초기의 학교 교육이 천황제국가의 확립을 위해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그 역할은 무엇을 토대로 이루어졌는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교는 단순히 교육사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제국 전체의 진로와 크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인류학적 필드워크를 수행했던 지바현 사와라의 ‘사와라소학교(佐原小學校)’를 주요 고찰 대상으로 하여, 한편으로는 국(國)-현(縣)으로 이어지는 공교육정책에 당시의 사와라가 어떻게 대응하고, 그것이 사와라소학교에 어떠한 형태로 나타났는가를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즉 학교와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의 관계에 대한 필드워크의 기록을 바탕으로 역사인류학적으로 추적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일본근대교육의 초창기 모습을 밝히고, 천황제국가의 군국주의 교육의 전사(前史)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일본 제국’의 출발점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중요한 시도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1872년 8월 3일에 문부성이 공포한 ‘학제’는 근대 일본의 교육제도의 최초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공교육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때에, 전국적으로 동일한 교육제도를 위로부터의 명령으로 일거에 시행하려고 한 것이었다. 이 학제에 근거하여 창립된 ‘사와라소학교’는 1873(메이지 6)년 5월 30일, ‘제1대학구 제29번 중학구 소학 제1교’라는 명칭으로 개교하였다. 개교 당시 학생은 21명(남19명, 여2명)이었으나, 연말에 이르자 215명(남 136명, 여 79명)으로 늘어났고, 소학교의 교원(敎員)은 학구에서 선정하였다. 사와라 소학교 창립과 관련하여 사와라무라의 유지들이 거액을 기부하여 추진하였고, 창립 3년 만에 주민들 사이에 정착하게 되었다. 1879년에는 ‘학제’가 폐지되고, ‘교육령’이 공포되었다. ‘교육령’은 지역차를 인정하고 민간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하지만 이 ‘교육령’은 1880년 12월 28일에 개정되는데, 이 ‘개정교육령’이 소학교 교육의 두 번째 분수령이 되었다. 개인주의적·실리주의적인 ‘학제’에서 출발한 교육이 우선 ‘교육령’으로 완만하게 좌선회하였고, 이어서 우경화로 급선회한 것이다. 또한 여태까지의 지육(智育)편중에서 덕육(德育) 즉 이데올로기교육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으며, 국가재정난으로 인해 국고보조금이 폐지되었다. 이와 같이, 일본에서 소학교 교육의 추진은 무엇보다도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즉 메이지시대의 학교는 촌락공동체적 성격을 농후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학교가 원래 천황의 학교로 전국에 일률적으로 발족하게 되기는 하였지만, 실제의 담당자는 촌락공동체의 지도자인 구 지방 명망가(名望家)층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으로 학교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학교는 애초부터 ‘국가의 기관’과 ‘지역의 기관’으로서의 성격을 동시에 제도적으로 보장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와 가족?촌락공동체와의 일체화는, 일본근대화정책의 일환으로서 교육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측면이 있었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학교는 ‘지역’과 ‘국가’의 양측으로부터 작용해 오는 힘을 결합하고 조정하는 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궁극적으로는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심어주는 주요한 기관이 되었던 것이다.
This article aims to discuss in detail the role of school for the establishment of the Emperor system in early modern Japan. The school is not only a problem about the history of education. It is associated largely with the course of the entire Japanese empire. I mainly consider Sawara Elementary School as a major object. Sawara is the place that I carried out anthropological fieldwork. And I focus on two points-the response of Sawara district to the public education policy, the reflection to Sawara Elementary School. In other words, I want to trace the relationship among the school and the community and the nation-state on the perspective of historical anthropology. This study reveals the earliest appearance of modern education in Japan, Imperial system, and has the meaning of militaristic education of Japan. Futhermore, I think it would be important to try to analyze the specific starting point of the Empire of Japan. The Ministry of Education promulgated a ‘School System(?制)’ on August 3, 1872. In 1879, the ‘School System’ was abolished, and announced ‘the education ordinance(?育令)’. It was amended in the December 28, 1880. This revised ‘the education ordinance’ was the second dividing-ridge in elementary education. After that, the direction of education was changed. They put emphasis on Imperial ideology. Thus, the promotion of primary school education in Japan, above all, have made of the community. School in the Meiji era reflected rich the nature of village community. The school was a field that combines and adjusts the power to act comes from both sides of the ‘local’ and ‘nation’. But ultimately it became a major ideological institutions instill an Imperial syst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