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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범환 (서강대)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30호
발행연도
2014.4
수록면
119 - 15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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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새롭게 발견된 파른본 《삼국유사》 왕력편을 검토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통해 경덕왕대의 정치적 동향을 왕의 혼인을 통해 알아보고자한 글이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경덕왕은 선비인 삼모부인을 폐출하고 후비인 만월부인을 맞이하였는데 그것은 삼모부인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이 그를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삼모부인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은 경덕왕이 왕권을 강화하고 어려운 정국을 안정시키는 데 있어 도움을 주기보다는 도리어 정치적 상황을 어렵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경덕왕은 삼모부인을 폐출할 수밖에 없었으며, 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돌아간 김충공의 딸을 새로운 왕비로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경덕왕대 왕비의 폐출을 자식을 얻지 못해 일어난 일로 해석하는 기왕의 연구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 즉 경덕왕은 왕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서슴없이 왕비를 폐출한 것이다. 비록 겉으로는 자식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왕비를 폐출한 것으로 이유를 삼았지만 그 이면에는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의도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경덕왕의 이러한 조치에 대하여 삼모부인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은 황룡사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 황룡사종을 주조하는 데 있어 엄청난 시주를 하였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경덕왕은 법해를 황룡사에 주석케 하고 황룡사를 중심으로 한 삼모부인의 정치세력을 해체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에 삼모부인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의 거센 반발이 있자 그것을 해소하기 위하여 삼모부인과 혈연적인 관계에 있는 김옹을 시중으로 삼았다.
경덕왕과 김옹은 서로 다른 정치적 성격을 유지하였고, 결국은 김옹 뿐만 아니라 경덕왕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세력들에 의해 녹읍의 부활을 가져올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경덕왕이 추구하였던 왕권의 안정은 점차 허물어지게 되었다. 비록 김옹을 시중에서 물러나게 하였지만 그 다음 해에 경덕왕이 사망한 것으로 볼 때 정치적 싸움에서 결국 경덕왕이 패배하였음을 헤아려 볼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헌영과 삼모부인의 혼인 배경
Ⅲ. 삼모부인의 폐출과 사량부인
Ⅳ. 경덕왕과 만월부인의 혼인
Ⅴ. 삼모부인의 재등장과 정국의 혼란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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