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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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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민족문화 제4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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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己丑獄事는 본격화 된 순간, 이미 그 원인이 되었던 정여립의 ‘역모’가 실패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으로 인해서 당시 조정의 동인 측 인물들 다수가 목숨을 잃거나 귀양을 갔고, 사건 종결 후에도 긴 세월 동안 그 정치적 파장이 드리워졌다.
    기축옥사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못한 점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사건에 대한 관심이 서인인 정철과 송익필의 기축옥사 조작 여부에 집중되었다는 점과 함께, 빈약하고 부정확한 사료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결합하여, 불확실한 사항들이 당파적 결론으로 귀결되곤 하였다. 아마도 이것은 이 사건에 대한 연구관점이 여전히 왕조적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선조가 어떻게 거의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기축옥사를 밀고 나갔는지 해명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기축옥사에서 선조가 신하들의 발언권을 제압할 수 있었던 일차적 원인은 ‘적가문서’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또 그는 국왕의 지위를 이용해서 ‘적가문서’의 내용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였다. ‘적가문서’에는 모반에 관한 내용이 없었지만, 선조는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직접적인 모반 행위를 동일시하였다.
    선조가 ‘적가문서’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신하들에서 강제할 수 있었던 것이 단순히 그가 왕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 중요한 조건은 당시 조정이 분열되어 있었다는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동 · 서간 갈등으로 가장 큰 정치적 이득을 본 사람은 선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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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ECN-0101-2016-810-001626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