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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불교학보 제48집
발행연도
2008.2
수록면
285 - 315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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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史蹟址로 지정된 선원사 터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논자들은 이곳이 신니동 가궐 터라고 한다. 그러므로 신니동 가궐은 선원사 터의 위치 비정 논쟁에 있어서 대척점과 같지만 이에 대한 고찰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바 없었다. 이에 필자는 문헌 자료를 통해 신니동 가궐의 축조 상황을 고찰한 결과, 신니동 가궐은 元宗5년 元의 親朝 명령을 면하고자 三郞城 假闕과 함께 약 30일 정도의 단기간에 급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비교될만한 고고 자료를 통해 고려시대 가궐의 축조와 운영을 검토한 결과, 가궐은 사찰의 부속 건물로 조영되었음도 알 수 있었다. 곧 신니동 가궐은 선원사에 부속된 형태로 단기간에 급조된 소형 건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니동 가궐터는 선원사 터의 위치 비정에 또 하나의 근거가 된다. 한편 기록의 부재로 논란이 많은 선원사 터를 현재의 사적지에 비정할 만한 근거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江華島내에서 결코 비교될 수 없는 규모를 가진 현재의 사적지야말로 江都第一寺刹이었던 선원사 터일 수밖에 없다. 둘째, 선원사는 건물의 외관을 重創했던 기록이 있는데, 현재 建物址들도 외관에 治石된 長大石을 덧붙여 정비한 흔적이 다수 확인된다. 셋째, 이곳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의 편년이 선원사의 존속 시기인 1245∼1400년 초반과 상당히 일치된다는 점이다. 넷째, 본 寺刹址에서 元나라 불교 미술의 영향을 받은 土製鷲頭片과 후기 密敎의 대표적 만트라 『옴마니반메훔(唵摩尼叭迷모)』이 새겨진 막새가 다수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는 還都이후 몽골 침탈로 강화도가 황폐화되었지만, 기록에 보이는 것처럼 원 간섭기에도 본 사찰이 고려 왕실에 의해 계속 운영되었음을 시사한다. 다섯째, 현 건물 遺構와 遺物의 잔존 상태 및 조선시대 선원사에 대한 국가 시책을 보면 대체적으로 인멸당한 느낌까지 든다. 이는 武臣 崔瑀의 願刹로 창건되었고, 이후 원 황실의 願刹로 지정받았으며 타도 대상인 고려 왕실의 가궐로 사용되었던 사실이 朝鮮 王朝의 건국 집단에게 용납되지 못하였던 결과로 보인다. 마지막 여섯째, 바로 현재의 터가 일부 논자들에 의해 신니동 가궐터로 비정된다는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신니동 가궐은 선원사의 경내에 부속 건물로 급조되었는데, 이는 당시 가궐 조영의 일반적 경향이자 가장 현실적 선택이었다. 그러므로 현재 사적 제259호로 지정된 곳은 선원사지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의 사적지를 포함한 주변의 선원사지로 비정될 수 있는 넓은 영역의 일단에 신니동 가궐이 위치했으며, 반대로 신니동 가궐을 포함한 주변 일대가 선원사의 옛 터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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