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불교학보 제55집
발행연도
2010.8
수록면
551 - 588 (3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금강산 楡岾寺의 53佛은 13세기말 閔漬가 『金剛山楡岾寺事蹟記』를 찬술하며 성립된 것이다. 유점사는 12세기초 대규모로 중창되었는데, 이때 일군의 통일신라 금동불이 유점사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얼마 뒤 민지가 이를 53佛이라 규정하며, 새로운 도상적 의미를 창안했던 것이다. 閔漬는 유점사라는 寺名을 근거로 느릅나무라는 소재에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舍衛城에서 문수보살이 주조한 53佛이 月氏의 땅을 경유해 이곳에 도착했다는 瑞像의 緣起를 만들었다. 그가 참여한 重修佛事의 낙성은 이러한 潤色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상의 유구한 沿革에 대한 강조를 통해 사찰의 정통성을 부각했다. 아울러 인도에서 만든 상이 불교의 중국 初傳에 앞서 금강산에 표착했다는 것은 고려말 불교계의 자주적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의도를 담고 있을 것이다. 상의 봉안에 있어 느릅나무로 佛壇을 조성하고 나뭇가지 위에 복잡하게 상을 배치한 것은 연기설화에 전하는 상의 발견 당시 상황을 再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설화의 등장인물이기도한 盧儁과 月氏王을 기리는 상과 사당이 조선시대까지 조성되어 있던 점도 특기할 만하다. 楡岾寺 53佛은 통일신라 당시의 조상 의도와 별도로 후세에 새로이 부여된 도상적 의미가 이후 상에 대한 예배와 경험을 재규정한 특수한 예이다. 특히 민지의 ``53佛``이라는 개념은 一群의 금동불을 집합적 단위로 결합시켰고, 화재나 도난 등의 이유로 그 수효에 변화가 생기더라도 53불이라는 완결성을 지켜내기 위해 다른 상으로 보충되었다. 그래서 楡岾寺의 53佛은 그 역사적 정체가 지속적으로 변모해온 유물이라는 점에서 범불교권 전체에서 중요한 조각사적 의의를 갖는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