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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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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9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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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이 글은 조선개발의 기초로서 사회간접자본의 구축을 주도했던 조선총독부 토목행정기구의 변동과 그 소속 관료들의 개발 인식을 살펴보며 ‘식민지 개발’의 실체와 성격에 접근하려 한 것이다. 1910년대 조선총독부는 대륙침략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차원에서 철도와 도로, 항만 등 토목분야에 많은 예산을 할애했다. 그 가운데 도로와 항만분야 등 토목행정을 담당했던 기구가 총독관방 토목국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치수나 도시계획 등 여타 분야의 성과가 미미했고, 관련 토목법규의 입안도 미비했다. 이후 1920년대 전반은 산미증식계획과 재해대책의 차원에서 하천 조사 및 치수사업이 실시되고 각종 법규의 입안이 추진되는 등 산업개발을 위한 토목정책의 방향 전환이 모색되었던 시기였다. 이를 담당한 기구가 총독관방 토목부였다. 그런데 1924년 행·재정정리로 토목부가 폐지되면서 내무국 산하로 토목과와 건축과가 편입되었다. 부서는 축소되었지만 1920년대 중반 ‘산업제일주의’가 표방되면서 이후 토목예산이 팽창되고 각종 토목사업이 활발해지면서 조선개발이 다각적으로 진행되었다. 다시 1930년대 후반 이후 전시체제기 토목예산은 급팽창했고 토목사업은 전쟁 수행을 뒷받침하는 전시(戰時)토목의 성격을 띠었다. 동시에 이 시기 전시행정의 간소화 차원에서 토목 부서는 광공국 산하로 편입되었다.
    한편 토목관료들은 ‘근대과학’인 토목공학을 전공한 테크노크라트로서 ‘하이 모더니즘’을 구현하며 각종 토목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해갔다. 그러나 이들의 ‘조선개발’ 인식은 자신들이 자연환경을 개척해 산업개발의 기초를 체계화한다는 우월감 속에 조선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또 이들이 지닌 전문성과 네트워크는 식민권력과 자본을 결합, 유착시키는 매개로 활용되었다. 근대화, 과학화로 포장된 조선개발의 속살은 일본인 자본의 이익 추구, 조선통치의 합리화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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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ECN-0101-2016-911-002333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