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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9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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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이 논문은 임진왜란기 대구의 수령과 지역 사족들이 일본군 침략에 어떤 방식으로 대처해나갔는지를 검토한 글이다. 대구는 1592년 4월 21일에 일본군이 쳐들어온 이후로 1593년 5월 15일 퇴각할 때까지 일본군의 후방 보급로이자 중간기지로 활용되었다. 일본군이 퇴각하자마자 명군이 팔거에 1년 정도 주둔하면서 대구는 경상도 중심지로 부각되었다. 따라서 임진왜란기 대구에 대한 이해는 일본군과 명군이 오래 주둔한 지역이라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대구 부사는 동화사로 들어가 관군을 지휘하면서 전쟁에 대처했다. 대구부 및 인근 지역의 전황을 상급자에게 수시로 보고하고, 주요 지역에 복병을 설치해 일본군에 타격을 입혔다. 또 의병 조직을 지원하고 屯田을 경영해 군량을 확보했다. 정유재란 때에는 도원수 권율과 관찰사 이용순이 공산성을 방어 거점지로 활용했으며, 사방에서 오는 군량들을 공산성에 비축했다가 경주 및 울산으로 이송했다. 사족들은 1592년 10월 무렵 적세가 치성해지자 다른 지역으로 피신했다가 1593년 5월에 일본군이 퇴각하자 귀향하기 시작했다. 사족들은 농사에 집중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생존해나갔다. 또 명군 주둔 군영에 물건을 팔아서 식량을 해결한 점도 주목된다. 사족들은 전쟁 중에도 제사나 독서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족들의 변하지 않은 일상이면서도 지키고자 한 가치와 신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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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ECN-0101-2016-911-0027865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