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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허준의 <잔등>은 장춘- 청진- 서울의 여로 속에 구성되어 있다. 회령에서 청진까지 주인공의 여행 과정에서 만난 소년과 노파는 유년과 노년, 남성과 여성, 복수와 화해, 가해와 피해 등의 대립적인 이미지들을 함축하면서 작품의 의미를 형성한다. 이것은 해방 정국의 복잡했던 삶의 양상들, 민족성과 계급성, 폭력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소멸하는 것과 출현하는 것 사이의 복합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소년은 식민지적 억압의 경험을 갖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에 대한 맹목적인 적개심을 간직하고 있다. 독립된 국가의 건설이라는 주체화의 논리는 항상 예속적 존재, 억압받을 대상을 필요로 한다. 민족적 차이에 근거를 둔 이러한 국가 건설의 논리가 제국주의를 답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파생을 가장한 제휴의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많은 제삼세계 국가의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복수의 정념에서 벗어나 있는 노파의 이미지를 통해서 우리는 식민주의적 의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해방 직후의 여러 문학적 성과 중에서 <잔등>은 식민주의적 의식 속에서 감추어진 식민지적 무의식의 문제를 만주·조선·일본의 관계 속에서 섬세하게 제기하고 있는 문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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