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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문화재연구소)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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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신숭겸은 전남 곡성 태생의 평민 출신으로 춘천으로 이주하여 寓居하였다. 곡성 목사동면 일대에 전승되는 관련 설화와 유적 등을 통해 볼 때 하층 호족 출신이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는 896년 무렵 궁예정권에 出仕한 후 기골이 장대하고 무용이 출중하여 軍門에서 두각을 보였다.
    신숭겸은 卒伍에서 출발하여 궁예정권 말기에 기병장군까지 올랐으며, 918년에 이르러 裵玄慶등과 함께 왕건 옹립 및 고려 건국을 주도하였다. 고려 건국 후 내정과 외정에 걸친 치적을 인정받아 평산을 관향으로 하사 받는 등 호족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신숭겸은 왕건이 親征하는 대부분의 전투에 참여하는 등 뛰어난 전공을 인정받아 마군대장군에 오르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신숭겸은 927년 대구 공산전투에 대장이 되어 精騎5천을 이끌고 참전하였다. 신숭겸은 고려군이 전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바쳐 왕건의 탈출을 도왔다.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한 후 신숭겸이 전사한 왕산 자락에 智妙寺를 창건하여 명복을 빌기도 했다. 또한 고려의 역대 국왕들은 팔관회를 개최할 때 추모행사를 열었으며, 성종 때에는 태조의 廟庭에 배향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숭겸을 평가할 때 주군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인물 만으로 인식할 경우 여러 공적이 폄하될 우려가 높다. 신숭겸은 나말여초의 사회 변동기에 卒伍에서 시작하여 기병을 총괄하는 마군대장군에 오른 기린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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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ECN-0101-2016-911-002818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