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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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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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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이 글은 가와치 지역에 정착한 백제계 도왜인들의 현황과 역할에 대하여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그 결과 곤지는 가와치 지역에서 정착하여 백제와 왜의 군사적 협력체계를 이끌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곤지는 461년 왜에 파견되어 가와치 지역에 정착하였다. 곤지 이전에 이 지역에 파견된 인물로는 주군과 지진원을 확인하였다. 그들은 5세기경에 왜에 파견된 인물로 왜와 우호를 닦기 위해서였다. 이들이 가와치 지역에 정착한 것은 백제계 도왜인들의 밀집 지역이라는 점과 야마토 정권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관문에 해당하는 중요한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야마토 정권은 백제의 선진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 국가체제를 정비하는 데 노력하였으며, 그 주도적 역할을 백제계 도왜인들이 한 것이다.
    이들이 가와치 지역에 남긴 주요 유적들로는 제방, 제철, 사찰, 고분 유적을 들 수 있다. 부엽공법을 활용한 관개 작업은 상습 범람지를 옥토로 바꾸어 놓았으며,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왔다. 그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가메이 유적과 사야마이케 유적을 들 수 있다. 제철 유적으로는 오오가타 유적이 대표적이며, 농기구와 무기류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여 국가 경쟁력을 강화시켰다. 신도하이지는 대표적 사찰로, 불교를 통해 국가의 통일성을 추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 백제계 도왜인들이 흔적은 다카이다야마, 이치스카, 아스카센즈카 유적등 많은 백제계 횡혈식 석실분이 조영된 것에서 확인된다.
    무엇보다 곤지를 모시는 아스카베신사가 존재한 것은 그가 가와치 지역에서 백제계 도왜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던 것을 보여준다. 그가 좌현왕 혹은 군군(軍君)이라는 직함을 가진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곤지는 이들의 힘을 바탕으로 백제와 왜와의 매개 역할을 하는 등 일본 열도에서 백제와의 협력체계의 필요성을 증대시켰다. 다만 곤지의 활동 무대는 현재의 아스카베신사 지역보다는 이시카와와 아스카가와가 흐르는 모리모토신사 부근의 미장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지역은 아스카라는 명칭과 부합하며, 고대 교통로의 중심이어서 보다 활동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곤지의 활동으로 백제는 왜와 군사 협력체계를 구축하였고, 이후 관산성전투와 백강전투에서 왜의 군사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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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ECN-0101-2017-910-00084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