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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曺凡煥 (서강대학교)
저널정보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46輯
발행연도
2016.8
수록면
77 - 10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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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지증왕대 고구려를 통하여 북위에 사신을 파견한 사실과 그것이 가지는 정치적인 의미에 대해서 살펴본 것이다. 신라는 소지왕 말년에 이르러 백제와는 거리가 멀어진 반면에 고구려와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신라의 이와 같은 외교 정책의 변경은 소지왕과 지도로 갈문왕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이 주도한 결과이며 삼국의 관계 정립에 있어 새로운 변화를 불러왔다.
지도로 갈문왕은 왕으로 즉위하여 3년째 되던 해인 502년에 고구려를 통해 북위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그의 이와 같은 대중국 외교정책은 소지왕을 이어 왕위를 계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갈문왕의 위치에 있었던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즉 그는 북위에 사신을 파견하여 책봉을 받고 그것을 통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후 지증왕은 508년에도 북위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이는 서역 물산에 대한 욕구때문이었다. 신라는 한 때 고구려를 통해 서역 물산을 구입하였으나 서로 사이가 멀어진 다음부터는 서역 물산의 구입이 쉽지 않았다. 물론 백제를 통해 서역의 물건을 구입하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신라 지배층이 원하는 만큼의 수요가 충족되지 못하였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북위에 사신을 파견하여 서역의 물품을 쉽사리 구입하고자 하는 목적이 컸다. 이는 마립간대 조성된 적석목곽분에서 많은 서역산 유리 제품이 발굴되었던 것을 통해서 입증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증왕대의 대외교섭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료의 부족이 일차적인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사료에 대한 자세한 검토가 부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라 상고기를 바라보는 잘못된 인식에서도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마립간 시대의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에 비하여 뒤떨어진 나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마립간 시대 및 지증왕대를 바라보는 기존의 선입관에서 벗어나야 신라 상고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지증왕과 그 시대에 대해서 제대로 된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炤智王 후반기 대고구려 관계 개선과 至都盧 葛文王
3. 502년 북위에 사신 파견과 지증왕의 왕권 확립
4. 508년 북위에 사신 파견과 서역품의 수입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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