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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명제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23호
발행연도
2016.9
수록면
133 - 175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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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교체 이후 조선 지식인들은 조선을 중화문명의 유일한 계승자로 격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경주하였다. 조선 지식인들의 노력은 종족ㆍ지리ㆍ문화적 측면에서 중화의 지위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문화적 측면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청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중화문화를 내면화하는 문제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된 것과 달리 청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커져만 갔다. 즉 청조의 치세가 안정 될수록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청을 사유하는 방식이 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李鼎受(1783~1834)가 활동하였던 19세기 전반의 서울지역은 다양한 사유들이 충돌하던 시․공간이었다. 한편에서는 18세기 후반 청 문물의 수용을 주장하였던 북학파들의 영향력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辛酉邪獄등을 통해 새로운 사상이 탄압당하고 외척 가문 중심의 권세가들이 정치적 주도권을 획득하고 있었다.
이정수는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다양한 견해를 수용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대청관을 내놓았다. 그는 우선 조선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강조하는 한편 고조선의 지리적 강역을 공유하고 있었던 청과 경계 짓기를 시도하였다. 이를 통해 청은 ‘이적’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이적으로서의 청의 지위는 오삼계론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이정수는 송시열과 김창업, 그리고 일부 북학파에 의해 이루어진 오삼계에 대한 긍정과 청에 대한 이해를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하지만 세계질서에 대한 이정수의 이해는 전통적인 시각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정수는 외국조빙조에서 중국 정사 외국전의 전통에 따라 중국과 해외제국들에 대한 조공․책봉 관계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또한 이정수는 서역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었다. 그는 서양의 학문을 금수의 가르침이라고 표현하며 西洋禽獸論을 전개한다. 즉 이정수의 대외인식은 전통적인 중화와 이적의 구도가 여전히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것이 세계의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儒學과 西學, 혹은 反儒學의 새로운 기준으로 전환됨을 알 수 있다. 이는 이정수의 문화적 화이관이 19세기 전반의 정치․사회적 상황과 긴밀한 연관을 맺으며 확장된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유연록』의 저술 배경과 그 체제
Ⅱ. 동아시아 각국 인식의 향배
Ⅲ. ‘해외세계’ 인식과 중층적 대청관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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