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45호
발행연도
2016.9
수록면
251 - 279 (2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920~30년대 한국교회는 어려운 농촌의 현실에 주목하고, 덴마크의 그룬트비의 영향을 받아 농촌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농촌운동은 일제의 탄압과 교회내부의 보수적 신앙인의 반대로 1930년대 말에 막을 내렸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에도 농촌문제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였으나, 해방 공간에서 한국교회의 농촌운동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강성갑은 해방 공간에서 이러한 농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상남도 진영에서 한얼중학교를 설립하는 등 기독교 사회운동에 앞장섰다. 강성갑은 1912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하였고, 연희전문 문과와 도시샤대학 신학과를 졸업하였다. 1943년 경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1946년 4월 진영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목회활동과 함께 기독교 사회운동을 전개하다가 한국전쟁 중에 ‘공산주의자’로 몰려 총살당했다. 이 사건은 소위 진영사건으로 알려져 있는데, 재판을 통해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가해자를 처음으로 처벌한 사건이었다. 강성갑의 경우에는 가해자를 처벌한 재판과 추모동상 제막식이라는 공적 행사를 통해 그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지고 명예가 회복되었으나 여전히 ‘공산주의자’로 몰려 가족들은 커다란 고통을 겪어야 했다. 강성갑은 덴마크 그룬트비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이를 실천했다. 복음중등공민학교를 설립하여 기독교 사회운동을 시작하였으며, 진영교회 및 지역사회와 함께 1948년,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흙을 사랑하자’라는 ‘삼애정신’을 교훈으로 하는 한얼중학교를 설립하고 농촌의 인재를 양성하였다. 강성갑의 한얼중학교 설립은, 해방 후 모든 것이 부족했으나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열의로 농촌의 교육을 위해 강성갑과 진영교회와 진영의 지역사회가 합심하여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고 대안을 만들어간 기독교 사회운동의 모범적인 사례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강성갑의 생애(1912~1950)
Ⅲ. 강성갑의 기독교 사회운동
Ⅳ. 강성갑의 죽음과 가해자 처벌
Ⅴ.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참고문헌 (13)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7-200-002010894